경기 평택에서 벼농사 짓는 김용기 씨
동물원 사육사를 꿈꾸던 청년, 농부의 길에 서다

이미지

평택에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3대째 벼농사를 짓는 서른두 살 청년 농부 김용기 씨. 사육사의 꿈을 품었던 그는 이제 드론 방제와 다각적인 농업 활동으로 안정적인 기반을 다지며 논밭을 무대 삼아 대를 잇는 농업의 가치를 증명해 가고 있다.

글. 백연선 | 자유기고가 사진. 김정호

이미지

김용기 씨(32)를 만난 건 지난 9월 중순, 막 ‘고시히카리’ 수확을 끝낸 그 다음 날이었다. 볕은 따가웠지만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던 날, 그의 트럭 짐칸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볏짚 부스러기가 남아 있었다. 한창 바쁜 시간을 보내던 그가 인터뷰를 위해 잠시 짬을 낸 것이다.

김용기 씨는 평택시 팽성읍에서 아버지 김학정 씨(61)의 뒤를 이어 3대째 벼농사를 짓고 있는 청년 농부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농사짓는 모습을 어릴 적부터 보고 자랐지만, 사실 그가 처음부터 농부가 되려던 것은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동물이 좋았어요. 그래서 동물원 사육사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대학도 동물자원학과에 진학했죠. 하지만 막상 학교에 다녀보니 생각과 많이 달랐어요. 애완동물에 관해 배우기보다는 소와 돼지 등을 배우는 축산학과에 가까웠죠. 전공을 살려 축산을 하자니 기반이 필요했고요.”

2020년 대학을 졸업하고 진로를 고민할 때, 지역농협에 다니며 농사를 짓고 있던 아버지가 농협중앙회에서 주관하는 ‘청년농부사관학교’ 과정을 소개했다. 이론과 실습을 병행하는 2개월간의 교육을 받으면서 김용기 씨는 농업의 가치와 매력을 새삼 깨달았다. 드론 작동법도 그때 익혔다. 이때의 경험은 농부가 되기로 마음먹은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미지
사육사의 꿈을 접고, 논으로

스물여섯의 나이에 그가 눈을 돌린 곳은 아버지의 논 3.3㏊(1만 평)와 3,300㎡(1,000평)의 밭이었다. 벼농사를 짓기로 결심한 그는 육묘부터 재배 관리까지 영농의 기초를 아버지에게 하나하나 배우며 현장 경험을 쌓았다. 드론은 물론 트랙터, 이앙기 등 웬만한 농기계도 능숙하게 다루게 되었다. 2022년에는 정부 청년창업농 지원 사업에 선발되어 4,290㎡(1,300평)의 논을 추가로 마련했다. 그 뒤 김씨는 조생종 ‘고시히카리’와 중만생종 ‘꿈마지’를 재배하며, 파종부터 수확까지 전 과정을 앞장서 해내고 있다. 물론 농사일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이앙기를 몰다 논두렁에 처박은 적도 있고, 드론 조종이 서툴러 약을 엉뚱한 곳에 뿌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실수와 시행착오 하나하나가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다행히 농사일은 적성에 맞았다. 자기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데다, 일한 만큼 결과가 돌아온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농번기 외에는 비교적 자유롭게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회사 다니는 친구들은 상사 눈치 보느라 힘들다고 하는데, 저는 사람 관계에서 오는 그런 스트레스는 없어요. 대신 하늘 눈치를 보죠.”

그가 멀리 논을 가리키며 말했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볕이 나면 나는 대로 하루 일과가 정해진다고 했다.

이미지
영농 규모화로 안정적인 수익구조 만드는 게 목표

현실적인 걱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쌀 가격이 불안정해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갖추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뉴스에서는 풍년이라고 하는데, 저희한테는 그게 꼭 좋은 소식만은 아니에요. 쌀이 많아지면 값은 떨어지니까요.”

1년 농사를 다 짓고도 얼마를 손에 쥘지 수확 전까지는 알 수 없다 보니 안정적인 계획을 세우기가 쉽지 않다. 김용기 씨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그는 6월부터 8월까지 지역농협의 요청으로 드론 방제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또한 밭에 양파, 배추, 무, 파, 감자, 들깨 등을 돌려 짓고, 이렇게 재배한 농산물을 오성·고덕·배다리·이충점 등 지역 로컬푸드 직매장에 직접 내다 팔고 있다. 겨울철에는 시농업기술센터 ‘파쇄지원단’에 합류해 농업 부산물 파쇄 작업을 도우며 추가 수익을 얻는 것도 벼농사 외 안정적인 소득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쌀농사 하나에만 매달리지 않고 영농의 외연을 넓혀가는 셈이다.

이미지
쌀농사를 넘어 ‘체험농장’이라는 내일로

김용기 씨의 목표는 단순히 쌀을 생산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우선, 농지은행 등을 통해 농지를 임대해 규모를 키우고, 벼농사와 작기가 다른 작목을 도입하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동물들을 길러 농사와 동물농장을 접목한 체험농장을 운영하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있다. 동물원 사육사를 꿈꾸던 어릴 적 마음이 형태를 바꿔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농업에 뛰어든 지 6년째. 아직 안정된 수익 구조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우리 먹거리를 책임진다는 자부심으로 자신이 택한 길을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는 김용기 씨다. “농사도 대를 이어 지을 수 있는 멋진 직업임을 입증하고 싶다”는 그는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논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동물원 사육사를 꿈꾸던 소년은, 이제 논 위에서 다른 방식으로 그 꿈을 키우고 있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