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청춘] ‘원앤온리팜’ 김찬우·송화연 부부의 꽃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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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에서 대지로, 꿈을 옮기다김찬우 씨는 원래 화가를 꿈꿨다. 그러나 붓과 물감으로 세상을 그리고 싶었던 소년은 미대 입시에서 고배를 마셨다.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와서도 한동안 진로를 정하지 못한 채 방황했다. “원하는 대학에 떨어지면서 진로를 놓고 고민했어요. 그림을 그리며 살 수 없다면 다른 일을 택해야 했죠. 그때 새롭게 찾은 돌파구가 바로 화훼농사였어요.” 사실 그에게 꽃은 낯선 존재가 아니었다. 부모님의 농장에서 뛰놀며 자란 유년 시절이 있었다. 1세대 화훼농업인이었던 부친 김문식 씨(73)는 서양철쭉을 비롯한 여러 화훼를 수십 년간 길러 오며 일가를 이룬 사람이었다. 학창시절 틈나는 대로 농사일을 도왔던 찬우 씨에게 흙을 만지고 꽃을 피우는 일은 그림을 그리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지 모른다. “화훼농사를 짓고 싶다”는 말에 부모님은 흔쾌히 손을 내밀며 그를 응원했다. 정년이 없고 즐기며 일할 수 있는 데다 수익성까지 갖춘 만큼, 앞으로 농업의 전망이 밝으리라는 판단도 뒤따랐다. 그렇게 자신의 진로를 확정한 찬우 씨는 한국농수산대학 화훼과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꽃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국내외 연수를 다니며 선진 농업 현장을 눈에 담았고, 그곳에서 아내 송화연 씨도 만났다. 화연 씨는 당시 막 태동하던 ‘치유농업’에 매료된, 꽃으로 세상을 치유하고 싶어 했던 당찬 아가씨였다. ![]()
부부가 함께 걷는 길2010년, 졸업 후 찬우 씨는 곧장 부친의 농장 일에 합류했다. 이듬해 결혼과 함께 화연 씨도 자연스레 농장으로 들어왔다. 화훼공부를 함께한 두 사람은 처음부터 손발이 잘 맞았다. 어느 한쪽이 이끄는 게 아니라, 나란히 걷는 부부였다. 당시 농장은 서양철쭉을 주 품목으로 프리지어와 카네이션, 여러 초화류 등을 재배하고 있었다. 문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왔다. 수익이 나는 품목엔 금세 경쟁자가 몰렸고, 수익성은 곤두박질쳤다. “처음 서양철쭉을 재배할 때는 수입이 괜찮았어요. 프리지어, 카네이션도 좋았고요. 하지만 이런 품목이 돈이 된다고 알려지면서 너도나도 재배에 뛰어들어 금세 경쟁이 치열해졌죠.” 농사도 결국 시장이다. 잘되는 품목엔 반드시 뒤따르는 이들이 있고, 경쟁이 붙으면 수익성은 점점 떨어진다. 부부는 다음 길을 찾아야 했다. 첫 번째 도전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위기 끝에 찾은 보석, ‘수국’에 매료되다그 갈림길에서 부부의 눈에 들어온 꽃이 수국이었다. 유럽에서 시작된 인기가 막 전 세계로 번지던 무렵이었다. 수국은 화려한 꽃 색과 탐스러운 꽃송이, 한 송이만으로도 꽃다발 못지않은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냈다. 부부는 그때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수국을 연구했다. 선진지 견학도 마다하지 않았다. 둘 다 화훼를 전공했다는 사실이 이 도전의 가장 든든한 밑천이 됐다. 작목을 바꾼다는 건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와 거래처, 익숙한 재배 방식을 전부 내려놓는 일이다. 몇 해를 다시 배우고, 실패하고, 고쳐가며 버텨야 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배신하지 않았다. 몇 해의 실패와 연구를 반복한 끝에, 부부는 도매업자들이 먼저 줄을 서서 사 가는 ‘원앤온리팜’만의 브랜드를 구축해냈다.
흙이 빚어내는 색, 정성이 만드는 신뢰1만1,880㎡(3,600평)에 이르는 부부의 비닐하우스에는 장미수국, 별수국, 볼수국까지 10여 개 품종이 저마다의 속도로 피고 진다. 이곳에서 한 해에 생산되는 수국만 6만 본. 부부가 키운 수국은 꽃 색이 선명하고, 정원에 옮겨 심어도 잘 자랄 만큼 건강하다는 평을 듣는다. 흰색, 청색, 분홍색까지 취향에 맞는 색을 고를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원앤온리팜’ 상표가 붙은 상자는 열어보지도 않고 사갈 정도로 도매상들로부터 신뢰를 쌓았다. 그 바탕에는 수국이라는 꽃의 독특한 성질이 배어 있다. 수국은 토양의 산도(pH)에 따라 꽃 색이 달라지는 몇 안 되는 식물이다. 흙이 산성에 가까우면 뿌리가 알루미늄 이온을 잘 흡수해 푸른빛이 짙어지고, 알칼리성에 가까우면 붉은빛과 분홍빛이 도드라진다. 같은 품종이라도 심는 땅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셈이다. 그래서 수국을 다루는 농부는 꽃이 아니라 흙을 먼저 읽어야 한다. 부부가 기르는 수국은 특히 재배가 어렵다고 알려진 초대형 품종과 반구형 품종이다. 주로 서울 양재공판장과 남사공판장으로 나가고, 오포 지역 로컬푸드 직매장에서 직거래로도 만날 수 있다. 계절과 협상하며, 최고의 상품 키워내수국 하면 흔히 여름을 떠올리지만, 원앤온리팜에서 가장 바쁜 계절은 따로 있다. “수국이 귀한 대접을 받는 때는 3월부터 시작해 5월 중순까지예요. 꽃송이가 커서 한두 송이만 가져다 놓아도 공간이 풍성해진다는 장점이 있어 특히 부활절이나 초파일 등 종교행사나 조경용 벽화, 봄꽃축제 등으로 수요가 많죠.” 자연 상태의 수국은 늦봄에서 초여름 사이에 피지만, 시장이 원하는 시점은 그보다 이르다. 부부는 온도, 영양, 광도 등 하우스 안의 미세한 환경을 하나하나 조절해 자연의 시계를 앞당긴다. 계절을 거스르는 게 아니라, 계절과 협상하는 일에 가깝다. 수국이 완판을 이어간다고 해서 부부의 마음이 늘 편한 것은 아니다. “화훼는 기호품이라 경기에 민감해요.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지금까지 완판을 이어왔지만, 늘 상품을 모두 팔 수 있을까 걱정하죠. 경기에 민감한 화훼시장의 돌파구를 마련하고, 하우스 가동률을 높이기 위해 작목을 늘리고 있어요. 지금 기르고 있는 국화도 그중 하나고요. 모두 안정된 환경에서 수국을 제대로 키워보겠다는 생각에서입니다.” 5월 말까지 수국을 전부 출하하고 나면 하우스는 잠시 쉬는 작기를 맞는다. 부부는 그 빈 시간조차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 애니시다(양골담초)와 국화를 돌려짓기하며 새로운 소득원을 찾고 있다. 한 가지 작목에 기대지 않고 하우스의 가동률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 그것이 경기를 덜 타는 농사를 향한 부부 만의 해결책이다.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것, 지속 가능한 농업 환경부부의 꿈은 소박하면서도 크다. 아이들에게 대를 이어 농사를 짓게 하는 것. 다만 단순히 재배 기술만 물려주고 싶지는 않다. 재배를 넘어 6차 산업까지 아우르는 시스템을 갖춘 농장을 남기고 싶다는 게 부부의 바람이다. 그 답으로 부부가 준비하는 것이 ‘치유농업’이다. 치유농업은 아내 화연 씨의 오랜 꿈이기도 하다. 3년 전부터 해마다 식목일이면 지역 주민에게 농장을 열어 수국 도슨트 투어를 실시하고 있는데, 화연 씨가 틈틈이 짬을 내 치유농업사 과정을 이수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저희는 꽃이 주는 치유의 힘을 믿어요. 가끔 꽃을 볼 때마다 너무 예뻐서 감격스러울 때가 있거든요. 인공지능 시대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힐링이 아닐까 싶어요. 그 힘을 알기에 치유농장도 분명 승산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수국의 꽃말 가운데 하나가 ‘진심’이다. 흙의 성질에 따라 색이 바뀌면서도, 그 안에 담긴 정성만큼은 변하지 않는 꽃. 부부가 16년째 지어온 농사도 이와 다르지 않다. 시장이 바뀌고 품종이 바뀌고 계절의 셈법이 바뀌어도, 두 사람이 흙 앞에서 지키는 마음만큼은 한결같다. 넓은 하우스 안에서, 부부는 오늘도 흙의 성질 하나하나를 읽으며 세상에 없던 색을 피워내고 있다. 그 색의 이름은, 결국 꽃을 향한 정성과 사랑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