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가 바꾼 제철의 기준 / ‘제철’이라는 말이 예전 같지 않다. 한반도의 기온 상승과 예측하기 어려운 이상기후로 인해 농작물의 생육 주기가 크게 요동치고 있기 때문이다. 봄꽃은 예년보다 일찍 피고, 여름은 길어졌으며, 폭염과 집중호우가 반복되면서 과일과 채소의 생산 일정도 예전과 달라지고 있다. 기후변화는 단순히 날씨를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온 ‘제철의 기준’ 자체를 흔들고 있다. 농업 현장의 변화는 소비자의 밥상과 장바구니의 변화로도 이어지는 모습이다. / 글. 편집실
달라지는 계절, 바뀌는 수확 시기

기후변화는 농작물의 생육 환경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봄철 기온 상승으로 개화 시기가 앞당겨지는 작물이 늘어나는가 하면, 여름철 폭염과 국지성 집중호우는 과수와 채소의 생육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일부 과일은 예년보다 일찍 출하되거나 수확 기간이 짧아지고, 고랭지에서 주로 재배하던 작물은 재배 적지를 찾아 더 높은 지역으로 이동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반대로 기온 상승으로 국내에서 재배 가능한 아열대 작물은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바나나, 패션프루트, 애플망고 등 일부 아열대 과일은 재배지가 점차 확대되며 새로운 소득 작목으로 주목받고 있다.

기후변화는 생산량과 품질에도 영향을 미친다. 같은 작물이라도 기상 조건에 따라 당도와 크기, 수확량의 차이가 커지고 있으며, 폭염과 가뭄, 병해충 발생이 겹칠 경우 가격 변동성도 커질 수 있다. 농업 현장에서는 기후에 맞는 품종 개발과 재배기술 개선, 스마트농업 도입 등을 통해 변화에 대응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제철을 적극적으로 즐기려는 소비 트렌드

농산물 수급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소비자들의 식자재 구매 방식도 눈에 띄게 변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 제철 식재료에 대한 관심 자체는 오히려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기후변화로 언제 어떤 작물을 안정적으로 만날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려워질수록, 역설적으로 ‘지금 나는 제철 재료’가 지닌 가치는 더 소중해지는 셈이다. 이는 기상 여건에 따라 달라지는 제철을 놓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즐기려는 소비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소비자들은 단순히 마트에서 눈에 보이는 과일을 사는 것에 그치지 않고, SNS나 농가 직거래를 통해 ‘지금 막 수확한 가장 신선하고 맛있는 시기’의 농산물을 찾아 구매한다. 정해진 월별 제철이 아닌, 산지의 출하시기에 맞춰 소비하는 ‘유연한 제철 소비’가 새로운 소비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동시에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온라인 직거래와 로컬푸드 유통도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변화에 대응하는 농가와 유통의 지혜

기후변화에 따른 제철의 변화는 생산자와 유통업계 모두에게 새로운 과제를 던져준다. 전통적인 출하시기만 고집하다가는 과숙으로 인한 상품성 저하나 출하 대란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스마트팜을 통한 미세 기후 제어, 고온에 견디는 신품종 도입, 출하시기를 다변화하는 기술적 대응이 필수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유통업계 역시 일률적인 계절 기획전에서 벗어나, 당해 연도의 기후 조건과 출하 상황에 맞춰 제철 상품군을 유연하게 재편하는 큐레이션을 강화하고 있다.

기후변화라는 불가피한 파도 속에서, ‘제철’의 의미를 재정의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자의 시계에 발맞추는 선제적 전략이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결정짓는 열쇠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