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테크가 농장에 새 판로를 여는 방식
부산물이 원료로, 곤충이 작목으로

. 김택원 | 과학칼럼니스트

태풍이 지나간 밭에서는 성한 것보다 상한 것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낙과와 갈라진 배추, 규격에서 밀린 무. 몇 달 동안 정성껏 키운 작물을 상품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손수 골라내는 일은 해마다 반복돼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렇게 버려지는 것들에 새로운 쓰임은 없을까. 다행히 최근 몇 년 사이 스타트업과 지자체는 물론 해외 기업까지 이를 원료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는 푸드테크가 만들어낸 변화다.

버려지는 작물을 다시 소중하게, 푸드테크의 ‘업사이클링’

푸드테크는 식품의 생산·가공·유통·소비 전 과정에 기술을 접목한 분야를 통칭한다. 잘 알려진 사례가 콩이나 완두 단백질로 고기 식감을 낸 대체육이나 동물 세포를 키우고 성형해서 만든 배양육이다. 이런 제품은 ‘농수산물을 대체’하는 대안 식품이라는 인상이 강해서 푸드테크 전반을 농업과 대립하는 흐름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푸드테크가 다루는 영역은 훨씬 넓다. 부산물을 되살리는 재활용(업사이클링), 곤충과 미세조류 같은 신소재 발굴, 유통 및 가공 자동화, 발효 기술 등 갈래가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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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업사이클링 상용화 사례. 왼쪽은 리하베스트가 맥주박 원료 ‘리너지 가루’로 개발한 베이글 브랜드 Re:bake,
오른쪽은 CJ제일제당이 사내벤처 브랜드 ‘익사이클’로 선보인 바삭칩(조각쌀·콩비지 활용).
농업 부산물이 고단백·고식이섬유 제품으로 재탄생한 대표적 사례다. ⓒ 리하베스트, CJ제일제당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세계 푸드테크 시장은 2021년 2,720억 달러에서 2024년 3,600억 달러(약 514조 원)로 30% 이상 성장했다. 국내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면서 영농 현장에도 변화가 나타난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부산물 업사이클링이다. 업사이클링은 버려지는 농업 부산물에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기술이다.

aT에 따르면 외관상 이유로 폐기되는 농산물만 연간 최대 5조 원에 달한다. 과거에는 사료나 퇴비로 쓰이던 사과박과 못난이 농산물, 감자 껍질 등이 이제는 식품 원료와 신소재로 활용된다. 농업 부산물에서 단백질과 식이섬유 등 기능성 성분을 추출해 식품 원료로 활용하는 기술은 이미 상용화 단계에 있다.

국내에서는 업사이클링 스타트업 리하베스트가 맥주박을 식품 원료로 개발했고, CJ제일제당도 업사이클링 브랜드 ‘익사이클’을 선보였다. 해외는 자원 순환의 산업화가 한발 앞서 있다. 네덜란드의 필파이오니어스는 감귤 껍질을 하루 4만kg 처리해 에센셜 오일과 셀룰로스로 되살리고, 곤충 단백질 기업 프로틱스는 2025년 국내 파트너사와 손잡고 아메리카동애등에 사육 시설을 한국에 세우기로 했다.

푸드테크, 현장에서는?

대량 사육 중인 아메리카동애등에 유충. 유기물을 섭식하며 자란 유충은 고단백 사료 원료로 가공된다.
사진은 네덜란드 곤충 단백질 기업 프로틱스의 사육 시설. ⓒ Protix

영농 현장에서는 곤충이 업사이클링 푸드테크의 핵심 요소로 주목받는다. 농업인에게 곤충은 농업 부산물의 새로운 판로인 동시에 새로운 작물이다. 유충이 음식물 쓰레기와 농업 부산물 등을 먹이로 삼는 데다 단백질 함량이 높고 사육 부담이 적어 사료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메리카동애등에가 새로운 작물로 주목받으면서 여러 농가가 농업 부산물을 자원화해 추가 수입을 올리는 데 기여한다. 관련 판매액도 2017년 8억 원에서 2021년 109억 원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제도적 기반도 기술 변화에 발맞춘다. 2025년 시행된 그린바이오산업법을 비롯해 농촌진흥청과 지자체의 실증사업이 확대 중이며, 일부는 이미 성과를 내고 있다. 경상남도농업기술원은 폐기 예정 양파를 아메리카동애등에 사료로 활용해 부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였고, 제주에서도 감귤박을 활용한 순환 모델이 확산된 것이 대표적이다.

2026년 6월 열린 경기농산물 업사이클링 사업 협약식 및 간담회의 기념사진.
진흥원은 이 사업을 통해 도내 업사이클링 기업 5개사에 사업화 자금(기업당 최대 2,000만 원),
학교급식 부산물 연계, 시장성 검증 등을 지원한다. 협약식과 함께 진행된 간담회에서는
부산물 수급 방식, 학교급식 연계 등 실무 사안이 함께 논의됐다. ⓒ 경기도농수산진흥원

다품종 원예 중심이라는 경기도 농업의 특성은 다양한 부산물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잠재력이 크다. 경기도농수산진흥원은 2026년 농산물 업사이클링 지원사업을 통해 관련 기업을 육성하는 데 나섰다. 감자 부산물로 자연분해 위생장갑을 만드는 그리코, 왕겨와 쌀겨로 천연 클레이 베이스를 개발하는 더플라워팩토리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와 함께 학교급식 전처리 부산물 연계도 지원 중이다.

물론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규제와 소비자 인식, 농산물 부산물의 수거·운송 체계는 여전히 보완이 필요하다. 하지만 작목반이나 협동조합이 부산물을 규격화해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면 새로운 원료 시장을 선점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제 부산물을 폐기물이 아닌 자원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