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아버지 대를 이어
100년 목장을 디자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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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힐 대신 장화 신고 축사로 출근하는 신세대가 있다. 아흔셋 할머니가 남긴 소 몇 마리, 이제 손녀 곽진영 씨의 손에서 카페와 유제품 가공공장까지 갖춘 ‘유옥목장’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글. 백연선 | 자유기고가 사진. 김정호

‘유옥목장’ 곽진영 씨(33)의 첫인상은 영락없는 요즘 세대다. 갈색으로 물들인 긴 생머리, 시선을 사로잡는 주황색 점프수트, 당찬 목소리까지. 이런 모습이 어울릴 법한 곳은 도심의 세련된 거리일 테지만, 정작 그녀가 서 있는 곳은 젖소 백여 마리가 되새김질하는 경기 평택시 청북읍의 한 축사다. 지저분하고 냄새나고 여자가 하기엔 벅찬 일이라는, 축산업 하면 흔히 떠올리는 이 오래된 편견을 그녀는 보란 듯이 걷어차며 7년 차 낙농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목장 이름 ‘유옥’은 할머니 김유옥 씨(93)의 이름에서 따왔다. 1973년, 할머니가 처음 소 몇 마리를 들이면서 시작된 목장은 아버지 곽성훈(64) 씨의 손을 거쳐 현대식으로 바뀌었고, 이제는 3대 주인장 곽진영 씨가 바통을 이어받아 자신만의 경영 철학으로 목장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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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을 넘어선 지 7년, 도시 대신 목장을 택하다

곽진영 씨가 축사에 발을 들인 건 2018년 국문학 전공의 대학 졸업을 앞두고 한 해 쉬며 진로를 고민하던 때였다. 축사와 붙은 집에서 나고 자라 소를 돌보는 일이야 익숙했지만, 사실 처음부터 목장을 물려받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마음을 움직인 건 어머니의 권유로 우연히 듣게 된 여성 낙농인 대상 경영수업이었다. 낙농 경영을 공부하며 ‘축산업도 어떻게 경영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비전 있는 사업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든 것. 때마침 잇따른 개발 사업으로 축사 이전을 앞두고 마음고생 하는 부모님을 보면서 그녀는 망설임 없이 현장에 뛰어들었다.

도시와 농촌이 뒤섞인 평택에서 축사 이전은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개발에 밀리고 주민 민원에 부딪히길 수차례. 새로 옮길 때마다 부지는 점점 작아졌고, 어렵게 자리를 마련해도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허가 하나 받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주저앉지 않고 ‘소통’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방역 때문에 예전처럼 아무나 축사를 드나들 수 없는 시대, 지역 주민과 소비자와의 거리를 좁히지 않으면 목장은 점점 고립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녀의 선택은 유가공이었다. 신선한 원유를 그냥 납품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만든 요거트와 치즈로 소비자에게 다가가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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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라또, 요거트, 치즈 등 유제품 개발해 소비자 품으로

준비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어머니 손에 이끌려 유럽 선진 목장들을 돌아보며 안목을 키웠고, 젤라또 하나 제대로 만들겠다고 본고장 이탈리아로 2주짜리 연수를 다녀왔다. 그렇게 익힌 기술로 요거트와 젤라또, 치즈를 만들기 시작했고, 서정리역 앞에 목장 이름을 그대로 딴 작은 카페 ‘유옥목장’을 열었다. 카페를 먼저 낸 이유는 명확했다. 냄새나고 지저분하다는 축사의 고정관념을 깨고, 밝고 깨끗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전략이었다.

예상치 못한 코로나19가 닥쳤을 때도 그녀는 흔들리지 않았다.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이대로 접어야 하나 싶었던 것도 잠시, 오히려 ‘목장에서 갓 짠 우유로 만든 건강한 먹거리’라는 입소문이 퍼지며 매출은 고공행진을 했다. 이런 노력으로 지난해 유가공품 매출만 1억 4천만 원을 넘기며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곽진영 씨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유럽 견학길에 눈여겨봤던 저지 젖소를 직접 들여와 시행착오 끝에 2023년부터 착유를 시작했고, 이 고소한 저지 우유로 만든 제품은 곧바로 카페의 새 간판 메뉴로 등극했다. 같은 해에는 6개월간 정성껏 숙성시킨 고다치즈를 국립축산과학원 주최 목장형 자연치즈 콘테스트에 출품해 금상을 받으며, 취미로 시작한 치즈 만들기가 실력으로 검증받는 순간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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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을 향한 그녀의 영리한 스마트팜 경영

지금도 곽진영 씨는 부모님과 함께 소를 돌본다. 하지만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규모만 키우는 대신, 귀표 센서로 소들의 활동량과 건강 신호를 실시간 데이터로 관리한다. 소가 두 배로 늘어난다고 수익도 두 배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경험으로 터득한 그녀는 규모를 불리는 대신 소 한 마리 한 마리를 더 세심하게 살피는 쪽을 택했다. 활동량과 되새김질, 발정 여부까지 분석해 건강 신호를 놓치지 않고, 송아지의 육성 단계에 맞게 배합 비율을 달리한 사료까지 손수 만들어 먹인다. 카페에서 커피를 내리면서도 휴대폰으로 소들의 컨디션을 체크하는 모습, 아날로그로 시작된 할머니의 목장이 손녀의 손끝에서 첨단 스마트팜으로 진화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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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와 스마트팜의 공존, 100년을 설계하다

현재 그녀는 축사 인근에 유가공 전용 공장 완공을 앞두고 있다. 이 공장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면 대형식품 매장이나 지역 농협 로컬푸드 직매장 등에 직접 만든 유제품을 판매할 수 있어 판로 확장에도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제 꿈은 지속 가능한 축산이에요. 규제는 심해지고 도시는 확장되죠. 소를 길러 우유를 파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걸 그간의 경험으로 뼈저리게 느꼈거든요. 그 안에서 살아남으려면 우유 생산에만 머물러선 안 돼요. 우유에 확실한 ‘부가가치’를 입혀 소비자를 사로잡아야 하죠.”

새벽 4시, 여전히 소먹이를 챙기며 하루를 시작하는 그녀지만 목장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눈빛이 반짝인다. “할머니와 아버지가 50년의 유옥목장을 지켜오셨다면, 앞으로 50년은 제가 이끌어 갈 차례예요. 할머니 이름을 딴 이 목장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 지금은 딱 그것만 생각하며 삽니다.”

아흔셋 할머니는 지금도 손녀가 짜온 우유로 만든 요거트를 가장 좋아한다. 반백 년 전 한 사람이 시작한 목장이, 세 세대를 거쳐 이제는 지역과 함께 숨 쉬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3대 낙농인 곽진영 씨가 써 내려가는 ‘유옥목장’의 100년은 이제 막 첫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