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재배한 재료 등으로 한과 만드는 윤초롱 씨 APEC 만찬에 오른 손맛으로 세계를 두드리다
경기 화성시 봉담읍의 작은 마을. 크고 작은 공장들이 늘어선 가운데 ‘초롱빛다과’라는 간판이 눈에 띈다. 커다란 유리문을 열자 달콤한 조청 냄새와 함께 알록달록한 정과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의 주인 윤초롱 씨(39)는 오늘도 그늘 아래 한과를 말리고 있다.
글. 백연선 | 자유기고가 사진. 김정호
음향 장비 대신 찹쌀 반죽을 쥐다
윤초롱 씨의 첫 꿈은 소리였다. 그 꿈을 따라 고등학교 때부터 디지털 영상을 공부했고, 대학에서 음향제작을 전공한 뒤 관련 회사에 취직했다.
“3개월 정도 일하면서 이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요. 관련 분야엔 실력자들이 너무 많았죠. 그들을 뛰어넘을 수 없다면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즈음 국비로 한식 조리 과정을 수강하면서 아르바이트로 처음 한과를 만났다. 손끝에 전해지는 찹쌀 반죽의 질감, 조청의 달콤한 냄새, 완성된 정과의 반투명한 빛깔. 한과를 만드는 모든 과정이 재미있었고, 잘만 하면 비전도 있어 보였다. 뒤늦게 배화여대 전통조리학과에 입학한 것도 ‘이론부터 제대로 배우자’라는 결심 때문이었다.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인 한국형 디저트 카페 ‘다미재’에서는 다양한 농산물로 한식 디저트를 만들었다.
“전통 식재료가 전혀 다른 형태의 디저트로 새롭게 태어나는 걸 지켜보는 것이 신기했어요. 그러면서 처음으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이거였구나’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저만의 다과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꿈이 더욱 선명해졌죠.”
‘이 길이 내 길’이라는 확신이 서자, 윤 씨는 부모님이 운영하던 정육식당 한켠을 작업 공간으로 꾸미고, 자신의 이름을 담아 ‘초롱빛다과’라고 이름 붙였다. 스물여덟의 나이에 홀로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당시 부모님은 한우 100여 마리를 키우면서 감자·고추·옥수수 등 다양한 밭작물을 재배하고 있었다. 이 같은 농촌의 풍성한 재료는 그에게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금귤·딸기·키위 등의 과일로 만든 과일정과와 도라지정과, 개성약과, 호두정과, 매작과까지 다양한 전통 다과를 시즌에 맞춰 구성하며 라인업을 넓혀나갔다.
때마침 젊은이들 사이에 약과가 인기를 끌며 새로운 트렌드로 떠올랐다. 하지만 혼자 수작업으로 제품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자동화 설비를 갖춘 식품회사들과 물량 경쟁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대신 그가 택한 건 한입 크기에 바삭한 식감이 특징인 ‘개성약과’였다. 손으로 빚어 기름에 튀기고, 조청에 재우는 복잡한 공정 끝에 탄생한 개성약과는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맛으로 눈길을 끌었다. 소비자들은 그 차별성을 알아봤고, 더 좋아했다. 포장 전략도 주효했다. 고급스러운 소포장으로 바꾼 금귤정과가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 빠르게 입소문이 난 것이다. 전통식품이라는 무게감 대신 세련된 디자인으로 접근성의 문턱을 낮춘 결과였다.
APEC 만찬이 쏘아 올린 확산
하지만 시장을 넓히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일일이 손으로 작업해야 하는 데다, 명절에 수요가 집중되는 계절성, 정체된 매출이 발목을 잡았다. 혼자 일하는 소규모 사업자의 벽 앞에서 윤 씨는 제품 다각화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했다. 그때 눈에 띈 것이 화성시 쌀을 이용한 뻥튀기 과자와 우리쌀 카스텔라였다. 지역 로컬푸드 직매장에 내놓을 때마다 완판을 기록하며 기대가 높아지던 참이었다.
바로 지난해 가을, 예상치 못한 연락이 왔다. 2025년 10월 말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만찬장의 디저트를 맡아달라는 요청이었다.
“연락을 받고 내가 해낼 수 있을까 겁도 났지만, 너무 기뻤습니다. 그간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매출이 정체되면서 회의가 들었거든요. 하지만 행사 참여를 계기로 처음으로 제대로 인정받은 느낌이 들었고, 이 길을 가야겠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행사 이후 아난티 그룹과의 납품 계약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한과만으로 한 달 300~400만 원의 매출을 올리며 안정 궤도에 접어든 것이다.
“전통식품명인 돼 세계인의 디저트 만들 것”
윤 씨는 한과 하나를 만들더라도 전통 방식을 고집한다. 작업실에 건조기가 없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바람이 통하는 그늘에서 말려야 옛맛을 재현해 낼 수 있어서다. 고온다습한 여름에는 가급적 전통다과의 생산을 멈춘다. 제품이 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는 쌀베이킹으로 전환해 수입의 공백을 메운다.
2024년 봄, 청년후계농으로 선정된 윤 씨는 10,890㎡(약 3,300평) 밭에 콩과 율무, 쪽파 등을 심으며 한과에 들어가는 곡식을 직접 재배하고 있다.
틈틈이 대외활동에도 열심을 내 스물여덟에 봉담읍생활개선회에 가입해 최연소 회원이 됐고, 지난해에는 화성시 4-H연합회 회장에 선출됐다.
이런 와중에도 윤 씨는 오는 7월부터 쌀 뻥튀기 과자와 카스텔라를 지역 내 8개 로컬푸드직매장에 선보이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한과의 계절성을 극복하고 연중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만들기 위한 전략이다. 직접 재배한 곡식, 지역 로컬푸드, 전통 방식의 손맛이 하나의 이름 아래 모이는 순간이다.
이런 그에게는 반드시 이뤄야 할 꿈이 있다. 한과로 전통식품명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 제품이 외국인들에게도 알려지고, 언젠가는 식품 제조업 공장을 세워 수출까지 해보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 한과에서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실력을 갖출 겁니다.” APEC 만찬에서 각국 정상들의 식탁에 오른 초롱빛 한과가 그 꿈의 첫 단추가 됐다.
바람이 통하는 그늘에서 천천히 말리는 한과처럼, 윤초롱 씨의 길도 서두르지 않았다. 음향 장비 대신 찹쌀 반죽을 쥐었고, 빠른 자동화 대신 느린 손맛을 택했다. 10년의 세월이 쌓인 작업 공간에서 그는 오늘도 금귤 씨를 하나씩 발라낸다. 언젠가 그 손끝에서 나온 다과가 세계인의 식탁에 오를 날을 기다리면서.
우리나라 전통 과자를 통칭하는 말로, 크게 유밀과(油蜜菓)·강정·정과·숙실과·과편·다식·엿강정 등 7가지로 나뉜다. 한과는 만드는 과정이 까다롭고 손이 많이 간다. 약과 하나를 완성하려면 반죽·성형·튀김·조청 입히기까지 수차례 손을 거쳐야 하고, 정과는 여러 날에 걸쳐 졸이고 건조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현재 국내에는 한과 분야 ‘대한민국 식품명인’이 지정돼 있으며, 농림축산식품부는 ‘명인’ 제도와 ‘전통식품 인증제’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