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짓는 농사가 곧 저탄소 농사
농업이 탄소중립의 주역이 되는 법

글. 김택원 | 과학칼럼니스트

농림축산식품부는 「2050 농식품 탄소중립 추진전략」에서 2030년까지 농가의 질소질 비료 사용량 감축 목표를 제시했으며, 유럽연합도 농가가 토양에 저장한 탄소량을 측정·인증하는 체계를 마련했다. 언뜻 정책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이는 농업이 탄소중립의 중요한 축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흙은 거대한 탄소 저장고

농업이 탄소를 다루는 산업이라는 말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지표면 1m 깊이까지의 토양에 저장된 탄소는 전 세계적으로 약 1,500~1,600기가톤(GtC)에 이른다. 대기 중 탄소량(약 760~810 GtC)의 두 배, 지구상 모든 식물 바이오매스(약 560~650 GtC)의 세 배 가까운 규모다. 흙이 곧 거대한 ‘탄소 저장고’인 셈이다. 국립농업과학원 연구에 따르면 한국 농경지 표토 30cm 깊이에는 헥타르당 평균 35톤의 탄소가 저장되어 있다. 이 많은 탄소는 작물이 광합성으로 끌어들인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잎과 뿌리, 작물 잔재를 거쳐 토양에 들어간 결과물이다. 작물이 만든 유기물을 미생물이 잘게 분해하면 그 분해 산물과 미생물 사체가 흙과 섞이고 흙 알갱이가 뭉쳐서 입단(粒團, aggregate)이라는 작은 덩어리 구조를 이루는데, 이 입단 내부에 갇힌 탄소는 산소와 미생물의 접근이 차단되어 수십 년에서 길게는 수천 년까지 안정적으로 머문다. 흙이 탄소를 가두는 핵심 메커니즘이 바로 이 입단 구조다. 문제는 이 구조가 농경 활동으로 쉽게 깨진다는 점이다. 쟁기로 흙을 갈아엎는 경운 작업은 입단을 물리적으로 깨뜨린다. 입단이 부서지면 그 안에 갇혀 있던 유기물이 산소와 미생물에 노출되고, 분해가 급격히 빨라지면서 토양 속 탄소가 이산화탄소 형태로 대기 중에 방출된다. 이러한 현상은 화학비료를 과도하게 투입했을 때 가속된다. 작물이 채 흡수하지 못한 질소가 토양 미생물의 활동을 자극해서 이산화탄소보다 약 300배 강력한 온실가스인 아산화질소(N₂O)로 방출되거나 지하수를 오염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농업은 온실가스의 ‘빌런’인 걸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6차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농업·임업·기타 토지 이용’ 부문은 전 세계 인위적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13~21%를 차지한다. 적지 않은 비중이다. 그런데 같은 보고서는 농경지를 포함한 육상 생태계 전체가 광합성과 토양 저장을 통해 연간 약 66억 톤(GtCO₂)의 탄소를 순흡수하고 있다고 밝힌다. 농업은 배출원이기도 하지만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를 직접 흡수하기도 하는 거의 유일한 산업인 셈이다.


탄소 관리의 핵심은 농지 관리

많은 사람이 친환경, 저탄소라고 하면 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는 무투입 농법을 떠올린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무투입을 고수할 경우 수확량이 떨어져 같은 식량을 얻기 위해 더 넓은 농지가 필요해지고, 이로 인한 산림 전용까지 고려하면 오히려 전체 탄소발자국이 커질 수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과잉 투입이다. 우리나라 농경지에는 헥타르당 평균 약 214kg의 잉여 질소가 남는다고 한다. 지나치게 많은 시비로 작물이 채 흡수하지 못하고 아산화질소(N₂O)로 남는 양이다. OECD 평균의 3.2배 수준이다. 만약 시비량과 시비 시기를 작물 생육에 정확히 맞춘다면 수확량을 기존대로 유지하면서도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비료와 농약을 아낄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는 현장에서 수치로 확인된다. 농촌진흥청과 서울대가 함께 진행한 실증 시험에서 생분해성 수지로 코팅해서 비료 성분이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나오게 한 완효성 비료를 한 차례만 시비해서 질소 투입량을 약 34% 줄인 바 있다. 그 결과 10a당 수확량은 기존 시비법과 사실상 동일하게 유지됐지만 같은 기간 아산화질소 배출은 절반 이상, 전체 온실가스 배출은 36% 이상 줄었다.

흙을 다루는 방식만 바꿔도 시비량을 줄이는 것에 버금가는 효과가 있다. 농업의 ‘밭갈기’를 살펴보자. 밭갈기는 농사 전체를 준비하는 중요한 작업이다. 그런데 흙을 갈아엎을 때마다 앞서 언급한 입단 구조가 깨지면서 그 안에 갇혀 있던 유기물이 분해되어 사라진다. 유기물이 빠져나가니 흙의 비옥도는 낮아지고, 그 안의 탄소는 분해 과정에서 공기 중으로 빠져나가 대기 중 탄소 농도를 높인다. 이중의 손해인 셈이다.

무경운 농법은 바로 이 손실을 줄이려는 시도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이 2015년부터 10년간 진행한 장기 시험에 따르면, 흙을 갈아엎지 않고 퇴비와 녹비를 꾸준히 넣어준 토양은 화학비료를 쓴 관행 재배 토양보다 탄소 저장 능력이 훨씬 빠르게 회복되었다. 생산성도 관행 농법 대비 87~102% 수준을 유지했다.

쌀농사에서도 농지를 다루는 방법에 따라 온실가스 발생량에 큰 차이를 보인다.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이 2024년부터 2025년까지 진행한 시험에 따르면 벼 재배 시 한 차례 중간물떼기 후 작은 물떼기를 두 차례 더 반복하면 상시 담수 대비 메탄 발생량이 44%까지 줄어든다는 점이 확인됐다. 모내기 전에 마른 상태로 흙을 부수는 마른논 써레질을 병행하면 농기계 사용에 따른 이산화탄소와 토양 메탄 배출이 추가로 줄고, 연료비도 함께 절감된다. 물꼬를 자주 여닫는 데 따른 노동 부담이 있지만 이는 농촌진흥청이 함께 보급하고 있는 ICT 기반 자동 물꼬 시스템으로 덜어낼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농업이 정밀해질수록 탄소배출량이 줄어든다는 점을 보여준다. 탄소중립이라고 해서 특별한 일이 따로 있거나 번거롭고 복잡한 무언가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들어가는 비료와 연료, 노동을 줄이면서 같은 수확량을 내는 농사가 곧 탄소중립에 기여하는 농사다. 사용 가능한 기술을 최대한 활용해서 경제성을 높이는 일 자체가 농업이 지구 환경에 기여하는 방법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