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 농장 활용한 치유농장 꿈꾸는 구슬아 씨
화가에서 치유농부로-캔버스 위에 토마토를 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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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을 내려놓고 삽을 들었다. 동양화를 전공한 화가 구슬아 씨(38)는 경기 김포 고촌의 흙 위에 새로운 캔버스를 펼쳤다. 토마토와 샐러드 채소를 키우는 그 농장은 곧 자연이 치유하는 공간, ‘팜앤갤러리’로 다시 태어나려 하고 있다.

글. 백연선 | 자유기고가 사진. 김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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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구슬아 씨(38)는 본인의 희망대로 예고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전업 화가의 길은 순탄해 보였다. 크고 작은 벽화 작업에 참여했고, 자신만의 캐릭터를 개발해 SNS에 이모티콘으로 팔기도 했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그림 못지않게 오래된 취미가 있었다. 어항 속 관상어를 기르는 일이었다. 구피, 안시, 알비노플레드 같은 물고기들이 알에서 부화해 헤엄치기 시작하는 순간을 지켜보는 기쁨은, 캔버스 위에 붓질할 때의 설렘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는 틈틈이 온라인 카페를 열어 동호회원들과 정보를 나눴고, 치어를 분양받아 직접 키워내는 일이 어느새 또 하나의 중요한 일과가 됐다.

알비노플레드는 한 마리에 1만 5,000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관상어를 분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습지식물도 기르게 됐고, 생명을 번식시키고 키워내는 일 자체에 깊이 빠져들었다. “취미 삼아 시작한 관상어 기르기가 어느새 짭짤한 부업이 됐어요. 자연스럽게 습지식물도 기르게 됐고요. 이들을 번식시켜 키워내는 일이 너무 재미있었죠. 본격적으로 뭔가를 키우고 길러내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게 그때였어요.”

눈이 간 곳은 아버지의 농장이었다. 부친 구본관 씨(69)는 경기 김포 고촌에서 오랫동안 샐러드 채소와 토마토를 재배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부모님 농사일을 도왔기에, 그녀에게 농사는 낯선 세계가 아니었다. 다만 본인의 이름으로, 본인의 방식으로 해본 적이 없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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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기회로 ― 청년창업농의 첫 삽

딸의 변화를 지켜보던 부친 구본관 씨가 어느 날 제안을 해왔다. 김포농업기술센터의 엘리트농업대학이 문을 열었으니 한번 공부해 보라는 것이었다. 2021년의 일이다.

“제가 농사에 관심을 가진 것을 알고 아버지가 저를 시험하려고 하셨던 것 같아요. 정말 농사 생각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으셨던 거죠. 공부를 할수록 재미가 붙었어요. 함께 공부하는 동기들을 통해 농사에 관한 다양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고요. 농사를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졌죠.”

공부를 마치고 내친김에 4-H에 가입하고 유기농업기능사, 종자기능사, 굴착기기능사, 드론기능사 자격증까지 잇달아 취득했다. 농업의 이론과 현장 경험을 모두 갖추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2022년에는 청년창업농에 선정돼 5억 원의 영농 정착금도 지원받았다. 화가에서 농업 경영인으로의 전환이 공식적으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처음 발을 들인 작목은 대파였다. 3,300㎡(1,000평)의 농지를 임대해 대파 농사를 지었다. 몸은 고됐지만, 고생한 만큼 수입이 생기자 자신이 붙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이듬해 고촌읍 향산리 일대에 2,400㎡(727평) 규모의 대지를 마련해 재배 시설을 갖췄다. 이 중 495㎡(150평)에 그린그레이스, 비타민, 치커리, 버터헤드 등 다양한 샐러드 채소를 심어 모듬포장을 한 뒤 지역 로컬푸드직매장에 납품했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한 봉지에 여러 채소를 담아내는 구성이 간편함을 원하는 주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입소문이 퍼지며 고정 소비자층이 형성됐다. 다음 해에는 샐러드 채소 농장 옆에 1,485㎡(450평) 규모의 시설하우스를 짓고 토마토를 입식했다. 첫해인 2025년, 토마토 판매로만 1,000만 원이 넘는 소득을 올렸다. 그뿐만이 아니다. 완숙토마토를 활용한 잼을 직접 개발해 지난해 10월 가평 ‘자라섬페스티벌’에서 100㎏을 생산해 완판했다. 처음 농사로는 결코 작지 않은 성과였다. 하지만 이러한 경제적 성과 속에서도 그녀의 가슴 한구석에는 늘 풀리지 않는 숙제가 있었다. ‘내가 가장 잘하는 예술과 내가 가장 사랑하는 농업을 어떻게 하나로 묶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단순히 농산물을 키워서 파는 것만으론 성에 차지 않았어요. 농장을 하면서 화가 경력도 살리고 싶었죠. 미술과 교육 기능을 겸한 농장이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치유농업이었어요.”

농작물을 키우고 수확하는 행위가 인간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 회복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에 주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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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앤갤러리 ― 자연이 치유하는 공간을 향해

결심이 서자 구슬아 씨는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치유농업사와 평생교육사 자격증을 추가로 취득하며 전문성을 쌓았다. 농장에 ‘팜앤갤러리(Farm & Gallery)’라는 이름을 붙였다. 농사와 예술, 두 세계를 하나로 잇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녀가 구상하는 팜앤갤러리는 교육과 예술, 그리고 농업이 공존하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그녀는 아이들이 흙을 만지며 토마토 모종을 심고, 그 성장을 지켜보며 관찰일지를 쓰는 과정을 하나의 예술 교육으로 정의한다. 직접 키운 토마토를 관찰하며 그림으로 표현하는 프로그램은 아이들에게 생명의 소중함과 관찰의 기쁨을 동시에 선사할 예정이다.

그녀의 시선은 사회적 약자들에게도 향해 있다. 지적·지체 장애인을 위한 원예 재활 프로그램과 입시 공부에 지친 청소년들을 위한 집중력 향상 치유 프로그램을 세밀하게 설계 중이다. “자연은 배신하지 않아요. 정성을 들인 만큼 자라나고, 그 푸른 빛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힘이 있죠. 제가 그림을 그리며 얻었던 평온함을, 이제는 농장에서 사람들이 얻어갔으면 좋겠어요. 흙을 만지고 채소를 따는 행위 자체가 가장 숭고한 예술 작업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이와 함께 지난해 완판에 성공한 토마토 잼을 비롯해, 고구마스프레드 등 농산물을 활용한 가공품 생산에도 힘을 쏟을 계획이다. 농장에서 키운 것이 치유 프로그램의 재료가 되고, 다시 가공품으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다. 작물을 생산하는 1차 농업에서 가공과 체험이 결합된 6차 산업으로 도약을 꾀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토마토 재배사 앞 495㎡(150평)의 부지에 교육장을 설립했다. 프로그램을 진행할 공간으로 꾸미기 위해서다.

“저는 자연이 주는 치유의 힘을 믿어요. 그래서 앞으로 저희 농장을 찾아온 사람들이 농작물을 가꾸고 그림을 그리며 하루만이라도 위안을 받는 농장으로 만들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것이 저를 믿어준 가족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니까요.”

붓 대신 삽과 드론 조종기를 든 그녀지만, 그녀가 꿈꾸는 세상은 여전히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닮아 있다. 김포의 너른 들녘에서 시작된 ‘팜앤갤러리’의 꿈. 구슬아 씨의 토마토 농장은 이제 단순한 일터를 넘어, 누구나 찾아와 마음의 빈칸을 초록으로 채울 수 있는 대한민국 대표 치유농장으로 익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