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용 로봇 이야기를 꺼내면, 얼굴부터 굳는 사람이 적지 않다. 화려한 홍보영상에 혹해 가격을 알아보면 초기 투자비만 수천만 원에 이르고, 적용 조건을 따져보면 바닥 평탄화에 작물 간격 규격화까지 요구된다. 로봇을 들이기 위해 밭부터 손봐야 하는 데다, 지금 짓고 있는 농사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워 결국 로봇에 맞춰 농사 방식까지 바꿔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 쉽다. 그런데 최근 과수원과 노지에서 실제로 활용되기 시작한 로봇 가운데는 전혀 다른 종류가 있다. 밭을 손볼 필요도, 새로운 조작법을 익힐 필요도 없다. 그저 입으면 된다.
글. 김택원 | 과학칼럼니스트
어깨, 허리, 무릎 부위별로 골라 쓰는 웨어러블 로봇
입는다고 해서 한 가지 형태만 있는 것은 아니다. 농작업에서 몸에 부담이 집중되는 부위가 제각각이듯, 웨어러블 로봇도 그 부위에 맞춰 여러 형태가 나와 있다. 전정 작업에서 어깨를 받쳐주는 조끼형, 과일 상자를 옮길 때 허리를 잡아주는 벨트형, 쪼그려 앉는 작업에서 다리를 받쳐주는 의자형까지, 이미 현장에 나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현대로템이 현대차와 공동 개발해서 보급 중인 세 종류다. 조끼형(VEX)은 팔을 들어 올려야 하는 상향 작업에서 어깨 부담을 덜어주고, 지게형(H-Frame)은 바닥의 물건을 들어 올려 옮기는 작업을 보조한다. 의자형(CEX)은 앉거나 쪼그린 자세를 지지해 다리 근육의 하중을 분산시킨다. 현대차가 공장용으로 개발한 엑스블 숄더는 2025년 농촌진흥청과 두 차례 현장 실증을 거친 뒤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2026년에는 착용 로봇 부문 최초의 KS 인증도 받았다. 한국로봇융합연구원의 기술을 이전받은 ‘들봇’도 ㈜고이버를 통해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가격도 자율주행 로봇과는 다른 세계다. 무동력 제품은 수십만 원에 100만 원대 수준이고, 무게도 1~2.5kg으로 두꺼운 작업복보다 무겁지 않다.
이 로봇들의 공통점은 밭을 손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판단도 내가, 동작도 내가 한다. 로봇은 그 동작에 실리는 신체 부담만 덜어낸다. 스스로 판단하는 로봇이 아니라 사람의 움직임을 보조하는 로봇이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전정이나 수확 같은 작업은 잎에 가려진 위치를 찾아야 하고, 나무마다 상태가 다르며, 그날의 날씨와 작물 조건에 따라 순서가 달라진다. 수십 년 현장에서 쌓인 판단과 감각이 필요한 일이다. 이는 자율 로봇이 온전히 대신하기 어려운 영역이고, 경험을 지닌 사람이 직접 일하면서 기계가 그 부담만 덜어내는 방식이 현재로서는 가장 적합하다.
스프링이 버텨주는 만큼 오래 일한다 — 작동 원리와 효과
농사는 경험이 쌓일수록 잘하게 되는 일이지만, 그 경험이 무르익을수록 몸은 반대 방향으로 간다. 허리는 굽고 어깨는 닳는다. 2025년 연세대 스포츠재활연구소가 농림축산식품부·농협중앙회와 함께 전국 농민 만여 명을 조사한 결과 10명 중 8명이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었다.
이 문제에 웨어러블 로봇이 답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엑스블 숄더나 현대로템 VEX 같은 무동력형은 배터리도, 전기도 없이 스프링과 탄성 소재가 근육이 내야 할 힘의 일부를 대신 흡수한다. 동력이 없으니 진흙탕에서 써도, 빗속에서 써도 고장 걱정이 없다. 마모된 부품만 교체하면 되고, 조끼 부위는 떼어 세탁할 수 있다. 한편 들봇처럼 동력을 쓰는 제품도 있다. 고강도 와이어를 감아올리는 롤업 방식으로 최대 20kg의 하중을 보조하며, 배터리 교체형이라 연속 작업도 가능하다.
효과는 수치로 확인된다. 엑스블 숄더의 경우 어깨 삼각근 활성도가 약 30%, 어깨 관절 부하가 최대 60% 감소한다. 팔을 들어 올린 채 가위질을 한 시간 정도 반복하다 보면 어깨가 뻐근해지고, 반나절이면 팔을 올리는 것 자체가 버겁다. 그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 허리도 마찬가지다. 수확철 무거운 짐을 반복해서 옮기고, 낮은 자리의 작물을 살피는 동작에서 허리 보조 장치를 착용하면 척추에 실리는 압력이 상당 부분 분산된다. 이처럼 효과가 분명한 만큼 제도적 지원도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농촌진흥청이 2026년 예산안에 농작업 안전관리 기술 및 웨어러블 편이 장비 개발 명목으로 30억 원을 신규 편성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다만 아직 모든 것이 매끄럽지는 않다. 보조금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농기계 인증 체계가 아직 정비 중이어서 들봇의 경우 기존 분류 체계에 포함되지 않아 인증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기술은 현장에서 활용될 채비를 마쳤는데 규제환경이 이를 따라오지 못한 셈이다. 더 까다로운 문제는 물리적 한계 쪽이다. 프레임 구조의 웨어러블 로봇은 좁은 고랑 사이를 오가거나 농기계에 탑승할 때 거추장스럽다. 한국처럼 경지 면적이 작고 밀식 재배가 많은 환경에서는 이 문제가 더 두드러진다.
이 한계를 좁히는 방향은 이미 나와 있다. 금속 프레임 대신 원단과 고무줄 같은 유연한 소재만으로 만든 이른바 ‘소프트 엑소수트’다. 서울대 조규진 교수팀이 개발한 무동력 가변 신축성 엑소수트는 무게가 850g에 불과하다. 착용자가 허리를 굽히면 신축성이 떨어지면서 브레이크처럼 작용하고, 무릎을 굽혀 바른 자세를 취하면 신축성이 높아져 편하게 움직일 수 있다. 부담을 흡수할 뿐만 아니라 부상 위험이 낮은 동작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방식이다. 이런 기술이 작업복 안에 겹쳐 입는 형태로 발전하면 좁은 고랑도, 낮은 농기계 좌석도 더 이상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다만 소프트 엑소수트는 아직 상용화 이전 단계다. 농작업처럼 동작이 불규칙한 환경에서 버틸 내구성을 확보하고, 가격을 낮추는 과제가 남아 있다.
자율 수확 로봇이 도입되더라도, 섬세한 판단과 감각이 필요한 작업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웨어러블 로봇은 그 자리에서 몸의 부담을 덜어주며 일을 더 오래 이어가게 한다.
전정과 수확의 계절은 계속된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끼면서도 아직 손을 놓기엔 이르다고 생각하는 농업인에게, 웨어러블 로봇은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지금의 농사를 더 오래 가능하게 하는 도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