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는 맛있는 밥을 짓기 위해 꼭 필요한 ‘품질’과, 밥짓기를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함께 짚어봤다. 하지만 아무리 완벽한 방법으로 밥을 지어도, 쌀 품종이 내 입맛과 맞지 않는다면 한 끼의 만족도는 쉽게 올라가지 않는다. 결국 밥맛의 완성은 ‘어떤 쌀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번 호에서는 알고 먹을수록 더 맛있어지는, 쌀 품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본다.
글. 함승일 밥 소믈리에
① 밥맛이 좋으려면 먼저 ‘생산지와 품종의 궁합’이 맞아야
경기도는 유서 깊은 명품 쌀 산지이다. 곡식이 여물 때 맛있게 잘 여물기 위한 충분한 일교차를 가지는 위도에 위치한 데다 물이 풍부하고 토양이 기름진 천혜의 자연조건 덕이다. 하지만 이러한 곳에서도 어느 품종이나 다 농사가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얼핏 보면 다 비슷해 보이는 벼도 품종이 가진 특성에 따라 농사짓는 난이도와 병해충 저항성, 수확량 등에서 큰 차이가 난다. 품종마다 잘 자랄 수 있는 기후·토양·재배 방식이 있어 아무리 좋은 품종이라도 적합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면 본래의 맛을 낼 수 없다. 경기미가 오랫동안 명성을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기후의 영향도 크지만 적절한 품종의 선택과 도입이 더욱 중요했다.
② 외래 품종에서 우리 품종으로
경기도에서 재배되는 벼 재배 면적의 상당수는 오랫동안 일본 품종이 차지해왔다. 본격적인 계기가 된 것은 1969년 ‘추청(아키바레)’의 도입이었다. 당시 만성적인 식량난 해결을 위해 도입된 ‘통일벼’와 압도적으로 차이나는 밥맛으로 인해 경기미는 맛있는 쌀의 대명사로 입지를 굳히게 된다. 2000년대에는 일본의 압도적인 인기 품종인 ‘고시히카리’까지 들여오면서 경기도 재배 면적의 64%를 이 두 품종이 차지하기에 이른다.
전환점은 2019년이었다. 일본의 수출규제 논란이 불거지면서 외래 품종 과의존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아진 것이 결정적이었다. 마침 경기도농업기술원은 경기지역에 적합한 밥쌀용 벼 신품종 육성을 시작해 ‘참드림’을 비롯한 밥맛 좋은 품종 개발에 공을 들여오고 있었다. 여기에 기존 품종이 기후변화에 점점 취약해진다는 문제까지 더해지며 품종 교체의 바람이 불었다. 더불어 소비자들의 변화된 입맛에 잘 맞는 신품종이 큰 반향을 일으키며 2023년 기준 경기도 벼 재배 면적의 70%가 국내육성 품종으로 대체되었고, 2025년에는 드디어 ‘참드림’이 경기도내 재배 면적 1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종자주권 확보와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풀어낸 도전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③ 쌀 품종: 아밀로스 함량을 통해 구분해보기
쌀 품종을 구분함에 있어 밥맛, 그 중에서도 식감을 결정짓는 핵심은 전분 속 아밀로스 함량이다. 찰기 있는 식감의 아밀로펙틴과 고슬한 식감의 아밀로스 비율에 따라 밥맛을 좌우하는 식감, 특히 찰기와 부드러움이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먹어오던 많은 밥쌀용 품종은 아밀로스 함량 15~24%의 범주에 있으며, 국내에서 재배되는 밥쌀은 보통 18~20% 내외이다. 참고로 흔히 찰진 밥맛을 내기 위해 추가하는 찹쌀은 아밀로스 함량 0~6% 사이다. 그런데 최근 중간찰이라고 불리는 아밀로스 함량 7~14% 사이의 저아밀로스 쌀들이 소비자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그 비결은 찹쌀을 넣지 않아도 찰지고 부드럽기 때문이다. 더불어 기존에는 없었던 팝콘향, 누룽지향 등이 나는 중간찰 향미가 등장하면서부터는 중간찰 향미의 전성시대가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밀로스 함량 25% 이상인 고아밀로스 쌀은 밥으로 먹기에는 무리가 있어 시중에서 찾아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최근 건강을 위해 저항전분에 대한 인지도가 생겨나면서 당뇨환자들이 도담쌀을 식사에 활용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또한 아밀로스 함량이 높은 쌀은 쌀국수 가공이나 동남아식 볶음밥을 만드는 데 적성이 좋다.
④ 내 입맛에 맞는 쌀 품종 고르기 가이드
쌀도 와인처럼 품종마다 어울리는 음식(페어링)이 다르다. 밥맛의 다섯 가지 구성요소인 향, 외관, 맛, 찰기, 경도(부드러운 정도)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는다면 찰기와 경도의 조화이다. 이 두 가지 특성에 따라 아래와 같이 네 가지 범주로 쌀의 특성을 나누어 볼 수 있다.
※ 추천 경기도 개발 품종
위 표에서 보듯 인접한 특성끼리는 서로 닮아 있어, 개인의 기호에 따라 유연하게 선택해도 무리가 없다. 예를 들어 ‘찰지고 단단한’ 식감과 ‘고슬하고 부드러운’ 식감은 교차 활용이 가능해 음식 궁합 역시 더 넓게 확장된다. 다만 쌀의 맛과 식감은 재배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생산지와 생산자에 따른 차이를 고려해 매해 햅쌀의 식미를 다시 확인해보는 것이 좋다. 결국 가장 맛있는 쌀은 기준이 아니라, 내 입맛이 선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