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의 내일] 로봇 벌이 꿀벌을 대신할 수 있을까? AI와 드론이 도전하는 식물의 짝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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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1
로봇 벌이 꿀벌을 대신할 수 있을까? AI와 드론이 도전하는 식물의 짝짓기
봄이 왔지만 과수원에서 꿀벌 보기가 예전 같지 않다. 기후변화와 살충제 남용, 기생 진드기 등 여러 요인이 겹치면서 꿀벌 군집이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줄고 있다. 문제는 꿀벌이 단순한 봄 풍경의 일부가 아니라는 데 있다. 사과, 배, 딸기 같은 과일류와 토마토, 오이, 수박 같은 열매채소는 꿀벌을 비롯한 수분 매개자 없이는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한다.
글. 김택원 | 과학칼럼니스트
꽃가루받이가 멈추면 농장에 무슨 일이 생기나
꿀벌이 사라지면 농업에는 어떤 일이 생길까? 농사와는 동떨어진 생태계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이미 현장 농가에서는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딸기나 토마토처럼 곤충이 수분을 매개하는 작물을 키우는 농가는 오래전부터 벌에 의지했다. 농촌진흥청 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시설 딸기의 화분매개곤충 이용률은 100%, 수박 92.7%, 토마토 84.5%에 달한다. 그런데 꿀벌 군집 감소로 수분용 뒤영벌 수요가 폭증하면서 농가 부담이 커졌다. 뒤영벌은 낮은 온도와 악천후에도 활동이 가능해서 농작물 수분에 널리 활용되는데, 뒤영벌 구입비가 급등한 것이다.
노지 과수 농가의 부담은 숫자로 더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2022~2023년 겨울을 지나며 경기도에서만 벌통 25만여 군 중 약 34%가 폐사하거나 이탈했다. 야생벌에 의존해온 사과·배 농가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벌을 구하지 못하면 사람이 직접 꽃가루를 묻히는 수작업에 나서야 하는데, 사과 농장 1ha를 인공수분하려면 10명이 이틀을 매달려야 한다. 인건비만 300만 원 이상으로 벌이 하던 일을 사람이 하면서 비용 부담이 급등했다.
기후변화는 여기에 ‘타이밍 잡기’와 ‘속도전’이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를 더한다. 우선 온난화로 과수의 개화 시기가 점점 빨라지면서 봄철 꽃샘추위에 노출될 위험이 커지고 있다. 나주 지역 장기 관측 자료에 따르면 배의 만개기는 기온이 1도 오를 때마다 3.6일씩 앞당겨졌는데, 꽃이 핀 상태에서 영하 2~5도의 저온이 닥치면 암술이 고사해 수분 자체가 불가능해지고 꿀벌도 활동을 멈춘다. 농가로서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꽃샘추위를 피해 사람이 일일이 수분을 끝내야 한다는 부담을 떠안는 셈이다.
기계가 꽃 사이를 누비다
꿀벌 감소와 기후 변동이 맞물려 농가의 수분 부담이 커지는 것은 억울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기후를 되돌리기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농가로서는 이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걸까? 다행히 전 세계 연구실과 스타트업에서는 이 문제를 기술로 풀려는 시도가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MIT 연구진이 벽에 부딪혀도 파손되지 않는 인공 근육으로 17분 연속 비행을 성공시키는가 하면, 일본 산업기술종합연구소 연구팀은 꽃가루를 비누거품에 담아 드론으로 암술에 직접 쏘는 방식으로 배나무에서 수작업과 비슷한 95%의 결실률을 달성하기도 했다. 워싱턴 주립대 연구진은 딥러닝으로 사과나무에서 가장 먼저 피는 튼실한 꽃만 골라 수분액을 쏘는 기술을 개발해 수분 성공률을 84%까지 끌어올리고 재배 효율을 높이는 기술을 선보였다.
다양한 시도 중 온실 농가의 노동력 문제에 가장 직접적으로 다가선 것은 이스라엘 스타트업 아루가(Arugga)다. 아루가의 로봇은 온실 파이프 레일을 따라 자율 주행하며 컴퓨터 비전으로 토마토 꽃의 개화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한다. 수분이 필요한 꽃에 도달하면 압축 공기 펄스를 정밀하게 발사해 벌의 꽃가루받이를 기계적으로 재현한다. 자율 주행 중 작물 생육 상태와 병해충 발생 여부까지 동시에 스캔해 농장주에게 실시간으로 제공하여 수분 작업과 농장 모니터링을 한번에 해결한다는 것도 강점이다.
노지에서는 드론이 인건비 절감의 핵심 수단으로 주목받는다. 미국의 드롭콥터(Dropcopter)는 꽃가루에 양(+)전하를 입혀 꽃 암술에 자석처럼 달라붙게 하는 정전기 방식으로 4시간 만에 약 5만 평을 수분한다. 야간이나 저온에서도 작업이 가능해 꽃샘추위를 피한 속도전에도 대응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강원도 춘천 등지에서 드론 인공수분이 시범 도입되고 있으며, 1ha 기준 15분에 50만 원으로 작업이 가능해 경제성도 입증됐다.
기술이 빠르게 진보하고 있음에도 연구자들은 조심스럽다. 꽃가루받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섬세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꿀벌은 꽃의 형태에 맞춰 자신의 몸 자세와 행동을 바꾸고, 동료들과 춤으로 꽃의 위치를 공유하며 최적 경로를 스스로 설계한다. 지금의 로봇은 해바라기나 사과처럼 접근이 비교적 쉬운 작물에만 제한적으로 활용될 뿐, 딸기처럼 반복 방문이 필요하거나 구조가 복잡한 꽃에 본격적으로 활용하기는 어렵다. 연구실에서 단 한 대의 로봇이 날아다니는 것과, 실제 농장에서 수백 대를 동시에 운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비용도 현실적인 장벽이다. 드론이 수분 작업을 하려면 기계에 넣을 꽃가루를 농가가 직접 구매하거나 사람 손으로 채취해야 한다. 수천 대의 로봇을 농장에 동시에 띄우려면 기체 간 충돌을 막고 구역을 나누는 복잡한 군집 제어 알고리즘이 필요하고, 이를 실시간으로 운용할 통신 인프라도 갖춰야 한다. 꽃가루 확보부터 장비 구입, 운용시스템까지 더하면 개별 농가가 감당하기엔 부담이 크다. 게다가 국내에서 시범 도입 중인 드론 수분만 하더라도 아직 수정률이 완벽하게 검증되지 않은 단계다.
현재로서는 로봇 수분의 가치는 꿀벌을 대체하기보다 보조하는 데 가치가 있다. 즉 꽃샘추위가 닥치기 직전이나 뒤영벌 수급이 끊긴 수분 적기에 투입하는 비상수단이라고 봐야 한다. 비싼 설치운용비는 개별 농가가 장비를 직접 구입하기보다 지자체 농업기술원이 장비를 확보해 수분기에 저렴하게 임대하거나 직접 파견 운용하는 방식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기술과 마찬가지로 신기술을 기존 방식과 조합하여 발빠르게 현장에 도입하는 것이야말로 지금의 변화무쌍한 농업 현장에 필요한 접근이다. 농사는 언제나 사람과 자연의 동업이었고, 기술은 그 동업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도구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