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를 이어 관엽류 생산하는 서면관 씨
셰프에서 농부로, 흙 위에서 다시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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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유명식당에서 일하던 청년 셰프가 이제는 흙을 만지는 농부가 됐다. 아버지의 농장 일을 돕기 위해 내려온 남사면에서 관엽식물을 키우며 농사의 매력을 발견한 서면관 씨. 폭염 등으로 농장이 무너질 위기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선 그의 농사 이야기를 들어본다.

. 백연선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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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기운 완연했던 지난 3월 중순. 경기도 최대 원예 단지가 자리한 용인시 남사면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며 분주했다. 화분이나 화초 등으로 겨우내 찬 기운을 걷어내고 집 안에 봄기운을 들여놓기 위해서다.

남사면 화훼단지 한 켠에 자리한 1,980㎡(600평) 규모의 ‘대부농장’에서도 청년 농부 서면관 씨(30)가 부친 서병희 씨(61), 어머니 김혜숙 씨(58)와 함께 복주머니란(디스키디아), 디시디아, 수박페페 등 작은 관엽식물을 돌보느라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관엽을 키우는 농가에는 요즘이 가장 큰 대목입니다. 식물을 관리하고 상품을 골라 포장하려면, 일분일초도 허투루 보낼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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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속에서 찾은 천직, 농업

대학에서 한식조리학을 전공하고 서울의 유명 레스토랑에서 셰프로 일하던 서면관 씨. 그의 인생은 2022년 말, 예기치 않게 농부의 길로 방향을 틀었다.

“요리는 제 오랜 꿈이었고, 주방에 서는 매 순간이 진심으로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평생 농장을 일궈오신 아버지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매출이 급감하고, 구성에 있는 농장마저 개발로 인해 이전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죠. 일단 ‘급한 불부터 끄자’라는 생각으로 고향에 내려왔습니다. 농장 이전까지만 도와드리고 다시 주방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죠.”

그런데 막상 농장 일을 해보니 낯설지만은 않았다. 셰프 시절 맛있는 음식으로 손님에게 기쁨을 주던 보람은, 정성을 쏟은 만큼 잎을 틔우는 식물의 생명력과 닮아 있었다. 로컬푸드 매장에 상품을 내놓으며 매출이 오르는 재미를 느끼자, 마음속 한구석에 남아 있던 ‘다시 셰프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은 어느새 ‘농부의 꿈’으로 바뀌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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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과 집중, 그리고 매뉴얼의 탄생

모든 귀농 청년이 그렇듯,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2023년 말 지금의 남사면으로 농장을 옮긴 뒤 의욕적으로 판로를 확장했지만,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동시에 관리하다 보니 몸이 따라가지 못했다.

“아버지가 왜 건강이 나빠졌는지 알 것 같았어요. 이렇게 무리하다가 내가 먼저 쓰러지겠다 싶었죠.”

그래서 내린 결론이 선택과 집중이었다. 판로를 도매 위주로 단순화하고, 생산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구조를 바꾸자 여유가 생겼고, 매출도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짜 위기는 작년 여름에 찾아왔다. 기록적인 폭염에 병해충까지 겹치면서 정성껏 키운 식물의 80%가 폐사 직전에 놓이며 상품성이 크게 떨어진 것이다. 올해 초까지 6개월 간 매출은 거의 없었고, 겨울철 난방비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이 이어졌다.

“다시 서울로 올라갈까 심각하게 고민했어요. 그때 부모님이 ‘기왕 시작한 일이니 조금만 더 버텨보자’라고 만류하셨죠.” 그 말에 다시 마음을 다잡은 그는 하우스로 들어가 벌레를 잡고 온도를 맞췄다. 또한 삽목을 하고 증식에 힘썼다. 그렇게 매일 하우스에서 살다시피 하며 얻은 값진 결과물은 바로 ‘생육 매뉴얼’이었다.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습도와 온도 관리 요령이 쌓였고, 이제는 어떤 환경에서도 식물을 건강하게 키워낼 자신감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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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와 체험’ 공간을 꿈꾸다

이제 서면관 씨는 단순한 생산자를 넘어, 식물이 주는 행복을 사람들과 나누는 식물 ‘에듀테이너(Edutainer)’를 꿈꾼다. 이를 위해 지난해 5월, 청년창업농 창업자금 대출을 활용해 인근에 2,112㎡(640평) 규모의 부지를 마련했고, 이곳에 하우스를 새로 오픈할 계획이다. 오는 9월 완공을 목표로 한 이 하우스는 단순한 재배지가 아닌, 사람들이 직접 식물을 접하고 힐링할 수 있는 ‘체험형 식물 농장’으로 꾸며질 예정이다. 이를 위해 그는 바쁜 농사일 중에도 용인시농업기술센터 등의 교육기관을 오가며 도시농업관리사와 화훼장식기능사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경기도농업기술원에서 체험전문가 양성 과정을 마쳤다.

“요리가 입을 즐겁게 하는 예술이라면, 농사는 마음을 치유하는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농장에 오시는 분들이 초록빛 식물을 보며 위로받을 수 있도록 멋진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인터뷰 내내 그에게서 농부로서의 자부심과 희망이 묻어났다. 봄철 대목을 맞아 하우스를 오가며 바쁜 하루를 보내는 그에게, 지금 이 일이 즐거우냐고 물었다.

“힘들어도 즐거우니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제는 절대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농사짓는 것. 그게 저의 목표입니다.”

흙을 믿고 내일을 심는 청년 농부의 진심이 그가 키워낸 관엽식물의 잎사귀마다 푸르게 반짝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