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의 내일] 스마트농업이 가벼워진다 AI와 로봇이 바꾸는 영농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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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농업이 가벼워진다 AI와 로봇이 바꾸는 영농 풍경공과대학을 졸업한 뒤 귀농한 A씨는 스마트팜 시설 확장을 두고 깊이 고민하다 결국 계획을 접었다. 초기 투자비와 운영비를 현재 딸기 시세로는 회수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기술 흐름은 다른 선택지를 제시한다. 생성형 AI와 로보틱스가 과도한 설비에 의존해온 기존 스마트농업의 구조를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글. 김택원 | 과학칼럼니스트 야심찬 만큼 너무 무거웠던 스마트농업기존 스마트농업 기술이 현장 적용에 어려움을 겪었던 근본 이유는 경직된 데이터 처리 방식에 있었다. 센서가 수집한 값들을 미리 정해진 기준표와 일일이 대조해 장비를 작동시키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예측하지 못한 변수가 생기면 대응이 어려웠다.
온실 스마트팜 시스템이 적용된 딸기 농장. 기존의 스마트팜은 초기 설비비용이 커서 보급에 쉽지 않았다. © 경상남도 실제로 과수원 제초 로봇 연구에서는 바람에 흔들리는 풀이나 늘어진 가지를 단단한 장애물로 오인해 작업을 멈추는 ‘유령 정지(Ghost Stop)’ 현상이 빈번하게 보고됐다. 이미지 인식 기술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주로 쓰이던 합성곱 신경망(CNN) 방식은 이미지의 작은 부분만 집중해서 보는 구조여서, 잎이 겹쳐 있거나 그림자가 지면 작물과 잡초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려면 바닥을 평평하게 고르고 작물 간격을 정확히 맞추는 규격화된 환경이 필수였다. 로봇 주행을 위해 울퉁불퉁한 노지를 평탄화하거나, 로봇 팔이 닿기 좋게 과수나무의 모양을 평면으로 바꾸는 등 ‘기계를 쓰기 위해 밭을 뜯어고치는’ 주객전도의 상황이 요구됐다. 온실을 짓는다면 구조물 건축비는 물론 냉난방 설비, 각종 센서와 제어기, 통신 인프라까지 갖춰야 했다. 국회예산정책처 보고서에 따르면 이러한 높은 시설 투자비가 진입 장벽으로 작용했다. 가벼움의 비결, 현장을 이해하기 시작한 기계상황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인공지능의 데이터 처리 방식 자체가 달라지면서부터다. 최근 농업용 로봇에 탑재되는 비전 트랜스포머(Vision Transformer) 기술은 이미지 전체의 맥락을 파악해 판단한다. 2025년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비전 트랜스포머는 잎이 서로 겹쳐 있거나 잡초와 뒤섞인 복잡한 배경 속에서도 탁월한 인식률을 보인다. 가려진 잎의 끝부분과 드러난 줄기 사이의 연결성을 계산해 전체 구조를 추론하기 때문이다. 장애물 판단도 정교해졌다. 과거 로봇은 바람에 흔들리는 풀을 보고 멈춰 섰지만, 최신 트랜스포머 기반 모델은 그것이 단단한 나무 기둥인지 치고 지나가도 되는 풀 무더기인지 스스로 분류한다. 덕분에 땅을 평평하게 고르지 않아도 로봇이 울퉁불퉁한 밭을 헤쳐 나갈 수 있게 됐다.
양파밭에서 농약을 살포하는 농업용 드론. 드론은 차륜형 로봇에 비해 농지 구획의 제약을 덜 받아 차세대 스마트농업의 핵심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다. © 농촌진흥청 데이터 부족 문제도 생성형 인공지능이 해결한다. 디퓨전(Diffusion) 모델은 실제와 구분하기 어려운 정교한 가상 이미지를 생성한다. 2025년 한 연구진은 디퓨전 모델로 해충 데이터를 생성해 희귀 해충 인식률을 크게 높였다. 대파의 근적외선 분광 데이터를 인공적으로 만들어 생육 예측 정확도를 개선한 사례도 보고됐다. 날씨 문제도 극복되고 있다. 최신 초해상도 복원 기술은 흐린 날씨에 촬영된 저해상도 드론 사진에서도 작물의 잎맥과 경계를 선명하게 복원한다. 구름이나 그림자에 가려진 위성 영상의 누락 부분을 주변 시공간 데이터로 추론해 채우는 기술도 개발됐다. 이러한 기술 발전의 핵심은 센서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밭 곳곳에 온도, 습도, 토양 센서를 빽빽이 설치해야 했다. 이제는 드론 카메라와 위성 데이터를 AI가 분석해 필요한 정보를 추론한다. 최소한의 센서만으로도 정밀한 영농 판단이 가능해졌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만큼 간편하게 스마트농업이 적용되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드론과 위성 이미징을 통합하여 노지에 적용한 스마트농업 실증 사례. 농촌진흥청 식량작물개발과와 충북대, 경북대가 밀양에서 공동 연구한 통합 제어 시스템이다. 위성과 드론이 촬영한 영상(a)으로부터 데이터를 수집하여 체계화하면(b, c), 이를 실시간 센서 정보와 통합해서 관리 화면에서 농지의 정보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d). 온실이 아닌 개방된 노지 환경에서도 최소한의 센서와 항공 데이터만으로 정밀 관리가 가능함을 보여준다. 최근 휴머노이드 로봇이 각광받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한때 기술 과시용 정도로 여겨졌지만, 핵심은 사람에게 맞춰 조성된 업무 환경을 로봇용으로 바꾸지 않고도 투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농업 AI도 마찬가지다. 밭을 기계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밭에 맞춘다. 울퉁불퉁한 땅, 빽빽이 심은 작물, 예측 불가능한 날씨를 기계가 이해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전통적인 농장 환경을 그대로 두고도 스마트농업이 가능해진 것이다. 스마트농업 지원 정책의 초점도 시설 건축에서 AI 농기계 보급과 데이터 활용으로 옮겨가고 있다. 온실을 짓지 않아도 되는 스마트농업, 그 가능성이 구체화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