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에는 바리스타, 밥에는 누가 있나?

. 함승일 밥 소믈리에

우리나라의 경제 수준과 함께 K-푸드의 위상 또한 높아지며, 이제 한식은 세계인이 경험하고 소비하는 하나의 미식 문화로 자리 잡았다. 그 과정에서 ‘맛을 설명하고 즐기는 방식’ 역시 점차 전문화되어 왔다. 지난 10여 년 사이 와인이나 커피처럼 특정 재료와 공정, 취향을 중심으로 한 미식 담론이 대중화된 것도 이러한 변화의 한 단면이다. 그러나 한식의 근간이자 우리의 주식인 ‘밥’으로 시선을 돌리면 상황은 다르다. 밥 역시 설명되고 이해되어야 할 대상이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설명할 언어와 기준은 아직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

밥에도 ‘밥 전문가’가 필요하다

최근 솥밥 문화가 확산되며 쌀 씻기 요령이나 조리법이 공유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쌀의 품종과 품질을 구분하거나 ‘밥맛’을 판단하는 기준을 명확히 알지 못한다. 필자는 경기도농업기술원이 개발한 신품종 쌀을 마케팅하며 ‘맛드림’과 ‘참드림’이 품종 출원 이후 재배 면적을 확대하기까지의 과정을 함께해 왔다. 소비자에게 이 쌀의 가치를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박람회와 축제 현장에서 직접 밥을 지어 맛을 보여주고 설명도 해보았다. 그러나 곧 표현의 한계에 부딪혔다. 필자뿐 아니라 많은 소비자가 ‘밥맛’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자신이 어떤 밥을 좋아하는지 말로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필자는 한동안 커피에 깊이 빠져 지낸 덕분에 세계 주요 커피 산지를 줄줄이 떠올릴 수 있다. 과일 향과 산미가 풍부한 에티오피아산 미디엄 로스팅 원두를 고르고, 추출 직전 직접 분쇄해 드립 레시피에 맞춰 커피를 내리는 과정도 익숙하다. 이렇게 축적된 커피 경험은, 쌀을 홍보해야 하는 현실과 대비되며 더욱 큰 괴리감을 안겨주었다.

커피 문화가 대중화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수많은 바리스타와 로스터의 역할이 있었다. 이들은 소비자와 직접 만나 원두의 산지와 품종별 특징을 설명하고, 맛있는 레시피를 개발해 공유하며 커피의 언어를 만들어왔다. 그렇다면 밥에는 그런 전문가가 없을까.

일본에서는 이미 2006년, ‘밥 소믈리에’ 자격 제도가 만들어졌다. 즉석밥과 도시락 등 쌀 가공 기업들이 참여한 협의체인 공익 사단법인 일본취반협회가 운영하는 이 과정은 현재까지 약 2천 명 이상의 취득자를 배출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대 일본 자격증을 취득한 대기업 소속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밥 소믈리에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현재 국내의 일본 밥 소믈리에 자격 취득자는 약 100여 명으로 추산된다.

밥 소믈리에 시험 공고문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본 자격은 밥 및 쌀에 관한 다양한 지식, 취반(밥 짓기)의 과학과 기술, 영양 및 위생 관리 지식, 그리고 맛있는 밥을 평가하기 위한 올바른 관능검사 방법을 습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밥소믈리에 자격과 역할에 대하여

밥 소믈리에 자격은 특별한 응시 요건 없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 교재를 사전 학습한 뒤 이틀간의 집중 교육을 받고, 필기와 실기시험을 치르는 방식이다. 흥미로운 점은 위생과 영양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관능검사 역시 ‘절대 미각’을 겨루는 자리가 아니라, 맛의 차이를 일정한 기준에 따라 구분하고 설명할 수 있는지를 평가한다. 많은 이들이 기대하듯 밥 소믈리에가 밥 한 수저 떠보고 “이건 고시히카리입니다”라고 단번에 맞히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대신 충분한 훈련을 거친 밥 소믈리에는 품종 그룹을 특정하고, 해당 쌀이 지닌 특성을 정확한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 참고로 일본에는 유통·가공 분야 전문가를 위한 ‘쌀 마이스터(Rice Meister)’라는 별도의 자격도 존재한다. 이들은 커피 블렌딩처럼 여러 품종을 조합해 최적의 맛을 구현하는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다.

2024년 밥 소믈리에 자격을 취득한 뒤, 필자는 ‘이 교육을 우리나라에서도 누구나 쉽게 접할 수는 없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공식 교재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확인하고자 시범 교육을 준비했다.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뜨거웠다. 첫 회차 30명 모집에 330명이 지원하며 11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한 것이다. 밥에 진심인 사람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을 이때 확신하게 됐다.

2026년부터는 4월과 11월에 정기 교육을 운영하고, 경기도 내 농업인과 급식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특화 과정도 개설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쌀 전문가가 늘어나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우리가 쌀을 고르며 겪어온 수많은 시행착오는 줄어들 것이다. 연중 균일한 품질의 쌀을 추천받고, 볶음밥이나 국밥처럼 용도에 맞는 쌀을 선택하는 일도 한결 쉬워질 것이다. 가정에서도 손쉽게 최고의 밥맛을 낼 수 있는 레시피가 널리 공유될 수 있다. 무엇보다 가치 있는 쌀을 알아보고, 그 가치를 정확한 언어로 전달하는 전문가의 존재는 우리 쌀 전반의 품질과 인식을 함께 끌어올리는 힘이 된다.

밥 소믈리에가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서 어떤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앞으로의 연재를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