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콩, 이제는
수량이 아닌 품질로 경쟁할 때

콩은 기원전 2,500년경 만주 일대에서 한반도로 전파되어 오랜 세월 동안 재배되고 있는 5대 식량작물 중 하나이다. 한반도의 오랜 역사와 함께 우리 식탁에 자리해 온 콩은 현재 전국 각지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경기콩은 품질과 맛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택림 농업연구사 / 경기도농업기술원 소득자원연구소

경기 북부 지역 콩의 특징

위도 38도 부근의 경기 북부 지역은 콩 재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춘 곳으로 낮과 밤의 일교차가 크고 일사량이 풍부하여 콩의 착협과 종실 비대가 원활히 이루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파주와 연천을 중심으로 한 경기 북부 지역은 경기도 전체 콩 생산량의 약 53%를 차지하는 경기콩의 주산지로 자리하고 있다.

경기콩 산업의 중심, 그러나 넘어야 할 과제

경기도 백태 재배면적의 약 80%를 차지하는 ‘대원콩’은 1997년에 육성되어 30년 가까이 전국적으로 재배되고 있다. 그러나 기후와 토양 등 재배 환경이 지속적으로 변하면서 적응력이 점차 약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대원콩은 병해충에 취약하고, 적심 재배가 필요할 정도로 생산비와 노동력이 많이 들어가는 품종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은 여전히 대원콩을 선택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대원콩이 아니면 판로 개척이 어렵기 때문이다. 어느 두부 가게는 “콩물은 대원으로 만들어야 손님이 좋아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여름철 대원콩으로 만든 콩물은 깊은 맛과 풍미로 그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이 구조는 역설적이다. 농민들은 판로 때문에 품종 선택의 자유를 잃고, 가공업체는 ‘맛의 기준’이 되는 품종의 퇴화로 품질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결국 우리 모두가 ‘대원’이라는 이름 아래 멈춰 있는 셈이다.

장단백목, 한국 콩의 뿌리

서리태 종실

우리나라 콩 육종의 역사는 경기 북부 파주 장단지역에서 시작되었다. 1909년 이곳에서 수집된 ‘장단백목(長湍白目)’은 1930년대 전국 장려품종으로 지정되어 경기도에서만 3만 9천ha 이상이 재배되었다. 성숙이 빠르고 종실이 충실해 품질이 뛰어났던 장단백목은 이후 ‘광교’, ‘황금콩’, ‘대풍’, ‘청자3호’ 등 59개 품종의 모태가 되었으며, 그 계보 속에서 탄생한 대표 품종이 바로 ‘대원’이다.

즉, 경기 북부에서 시작된 콩 육종의 전통은 오랜 세월 다양한 품종개발로 이어져 왔으며, 오늘날 경기콩이 품질과 맛으로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경기콩, 품질로 전통을 이어가다

콩 육종 세대단축 연구온실

경기도 연천에 위치한 경기도농업기술원 소득자원연구소는 경기콩의 오랜 전통을 이어받아 품질 중심의 신품종 개발에 주력하고 있는데, 분자표지를 활용한 조기 선발과 세대단축 연구온실을 통해 육성 기간을 단축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 트렌드에 대응한 맞춤형 품종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 중심의 우수한 품질은 곧 시장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풍미가 가득한 두부용·콩물용 콩, 비린내가 나지 않는 콩, 진한 녹자엽 검정콩 등 경기콩이 나아갈 방향이 무궁무진하다.

콩에는 농업의 역사와 지역의 정체성, 그리고 우리의 식문화가 담겨 있다. 경기 북부에서 시작된 콩 육종의 전통은 품질 중심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이제는 ‘많이 생산하는 콩’보다 ‘가치 있게 재배되는 콩’이 주목받는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