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에서 포도 재배하는 이준희 씨

골프장에서 포도밭으로…
청년 농부의 두 번째 인생

경기 안성시 서운면. 우리나라 포도 재배의 역사가 시작된 이곳에서, 귀농을 택한 청년이 있다. 골프장 캐디로 일하던 이준희 씨(30)가 어머니의 부상을 계기로 농사의 길을 택한 것. 아버지의 포도밭 일부를 물려받아 자신만의 농장을 시작한 그는 이제, 더위도 잊은 채 땅을 일구고 있다.

. 백연선 자유기고가 / 사진. 배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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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준희농장을 찾다

경기 안성시 서운면은 우리나라 포도 재배의 발상지다. 700ha가 넘는 포도밭에서 안성 포도 생산량의 65% 이상을 담당하는 이곳에서 3년 전, 한 청년의 특별한 도전이 시작됐다. 바로 캐디 생활을 접고 포도농사에 뛰어든 ‘준희농장’의 이준희 씨(30)가 그 주인공이다.

서글서글한 인상에 다부진 체격의 이준희 씨는 30도를 웃도는 폭염 속에서도 포도 수확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7월 말 조생 거봉 ‘이즈카’를 시작으로 10월 중순까지 ‘신노트’, ‘샤인머스켓’, ‘BK시들리스’ 등 다양한 품종의 수확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부상이 바꾼 인생의 방향

고등학교 졸업 후 도장일을 하며 일찌감치 사회에 뛰어든 이준희 씨는 군 전역 후 새롭게 캐디 일을 시작하며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3년 전 어느 날, 개복숭아를 따던 어머니가 나무에서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그 순간 모든 게 바뀌었다.

“어머니가 다치면서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때 포도 수확이 한창이었는데 집에 일손이 부족했죠. 급하게 회사에 휴가를 내고 아버지를 도왔습니다. 한 달 동안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만큼은 그렇게 편할 수가 없더라고요.”

캐디로 일하며 어느 정도 돈은 모았지만, 사람들을 응대하면서 쌓인 스트레스가 적지 않았다. 그때 부모님 곁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농업에 종사하며 안성 지역에서 선도농업인으로 인정받는 아버지 이병관 씨(60)의 든든한 뒷받침만 있으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도 섰다.

그렇게 2023년 본격적인 농사일에 뛰어든 이준희 씨 덕분에 ‘준희농장’에도 새로운 변화가 찾아왔다. 귀농 초기 아버지는 농사에, 아들은 홍보와 판매에 집중하며 각자의 장점을 살린 역할 분담으로 시너지 효과를 높인 것이다. 이준희 씨가 틈날 때마다 안성 새벽시장과 주말장터, 청년농부 장터 등에 나가 직접 판매에 나서는 것도 농장 홍보와 고객 확보를 위한 전략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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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농사, 아들은 판매… 따로 또 같이

전체 1만 3,200㎡(4,000평) 규모의 비가림 시설 중 3,300㎡(1,000평)는 아들 이준희 씨 몫이다. 아들이 농업에 뛰어들자 아버지 이병관 씨는 자신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영농을 할 수 있도록 과감히 농장 일부를 그에게 물려준 것. 본인이 스스로 고민하며 뛰어든 이상, 최선을 다해 농사를 지을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이런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이준희 씨는 농사일하는 틈틈이 끊임없이 공부에 매달렸다. 안성 4-H연합회 모임에 적극 참여하고, 한경대 마이스터대 청년 CEO과정과 농식품부 스텝업 교육 등을 차례로 이수하며 전문성을 키워나갔다. 덕분에 고비 때마다 청년창업농 자금과 4-H시범사업 자금을 지원받으며 빠르게 정착할 수 있었다.

이런 노력의 결과 준희농장의 포도는 색이 선명하고 껍질이 얇으면서도 당도가 높아 특유의 맛과 향을 자랑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도 측정을 통한 품질 관리로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으면서 생산량의 80% 이상을 직접 판매하는 성과를 올리는 것도 준희농장의 자랑이다. 아버지가 앞에서 이끌고 아들이 뒤에서 받치며 준희농장이 모범적인 세대교체를 이뤄가고 있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시련도 있었다. 지난해 11월 말 갑작스러운 폭설로 이준희 씨의 비가림 시설 80%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올해 수확에 큰 타격을 입는 것은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이준희 씨는 낙담하지 않는다. 이런 시련들이 모여 자신을 더 단단하게 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다행히 포도나무 뿌리는 살아남아 내년쯤에는 어느 정도 수세를 회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폭설로 포도농사로 돈을 벌겠다는 꿈은 잠시 미뤄졌지만, 다양한 영농기술과 이론을 익혀 부모님은 물론 소비자들에게 인정받는 농부가 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단순한 성공을 넘어 농업계의 롤모델이 되는 것, 이것이 이제 막 포도농사에 뛰어든 젊은 농부 이준희 씨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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