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맛은 쌀맛에서 시작!
경기도 품종으로
전통주의 길을 열다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단순히 밥을 통한 에너지 섭취를 넘어,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 속에 깊이 뿌리내린 밥에 대한 중요성을 나타내는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한국인의 쌀 소비량은 꾸준히 감소했다. 무엇보다 20대에서 40대까지의 젊은 층에서는 쌀 소비가 30% 이상 감소했다. 이는 서구화된 식문화와 대체 식품 소비 증가 등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쌀 소비 감소를 해결하기 위해 아침밥 먹기 캠페인이나 쌀을 이용한 가공 제품 개발을 통해 소비 확대를 시도하고 있다.

이대형 농업연구사 / 경기도농업기술원 농식품개발팀

최근 음식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먹거리의 기본이 되는 쌀에 관한 관심도 증가했다. 품종을 선택해 구매할 수 있는 쌀 전문점이 생겨나고, 백화점 식품 판매장의 쌀 코너에서는 20여 종의 단일 품종 쌀을 취급하고 있다. 이러한 쌀 품종에 관한 관심은 ‘좋은 쌀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더 맛있는 쌀밥을 먹을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으로 이어지며, 먹거리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과거에는 지역명을 중심으로 홍보하던 쌀이 이제는 품종 중심으로 홍보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트렌드는 쌀밥을 먹는 소비자뿐만 아니라 술을 만드는 사람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술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맛있는 술을 만드는 데 관심을 가질 것이다. 전통주의 주된 원료는 크게 쌀, 누룩, 물로 나뉜다. 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재료인 쌀에 관한 관심은 다른 어떤 재료보다도 크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주 제조용 쌀에 관한 연구가 부족한 실정이다. 반면, 비슷한 양조 문화를 가진 일본은 주조용 쌀에 관한 연구와 품종 개발이 활발하다. ‘주조 호적미’는 일본주 제조에 적합한 성질을 가진 주조 전용 쌀 품종의 총칭으로, 일반 밥쌀보다 입자가 크고 중심부에 심백(心白, 전분만이 모여있는 부분)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일본은 지역별로 우수한 신품종을 개발하거나 오래된 품종을 부활시켜, 일본 술의 다양성과 품질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현재 전통주 제조를 위한 전용 쌀 품종이 없다. 특히 많은 양조장이 원가 문제 등으로 수입쌀이나 몇 년 묵은 정부미(나라미)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양조용 쌀 품종에 대한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다. 또한, 양조 전용 품종이 나온다고 해도 바뀌는 제조 방법에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에 쉽게 쌀을 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 농가의 재배 여부, 양조장의 활용 가능성 등 실제 사용을 위한 조건에는 가격과 공급 안정성 등 다양한 문제가 따른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새로운 양조용 품종의 개발보다는 현재 재배되고 있는 밥쌀용 품종 중 어떤 품종이 전통주 제조에 적합한지를 파악하고, 그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 경기도농업기술원에서는 경기도에서 개발한 쌀 품종 4가지(참드림, 가와지1호, 꿈마지, 연진)를 이용해 막걸리와 증류식 소주를 만들어 전통주갤러리에서 시음 행사를 진행했다. 각각의 품종들은 최근 경기도에서 지역별로 많이 재배되고 있는 대표 품종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쌀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니냐”는 생각으로 시음 평가에 참여했지만, 품종 간 차이가 크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막걸리의 경우, 참드림에 대해 ‘깔끔하다’는 평가가 많았으며, 특히 여성과 20대, 50대 연령층에서 기호도가 높게 나타났다. 증류식 소주의 경우에는 여성 20대와 50대에서 가와지1호에 대한 관능 평가 점수가 높았다.

이처럼 현재 소비되는 쌀들의 양조 특성을 파악하는 일은 양조장에서 쌀을 선택하고 소비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전통주의 주원료인 쌀을 이용한 술들 사이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쌀에 대한 차별화가 필요하다. 이제 우리도 일본 사케처럼 ‘품종’이라는 요소를 확립하고, 이를 마케팅에 활용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는 젊은 양조인들이 많아지면서, 기존 쌀을 굽거나 죽을 만들어 사용하는 등 새로운 시도들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쌀이라는 원료를 더욱 다양하게 활용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그동안 전통주는 산업화와 대량생산이라는 이름 아래, 저렴하고 한정된 원료를 사용해 왔다. 결국 그것이 술의 다양성을 포기하는 결과로 이어진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맛이 획일화되어 가는 전통주 시장에서 품종을 중심으로 한 원료 사용은 전통주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내가 빚은 술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술의 특성에 맞는 쌀 품종을 찾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