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머스 드림에
제 인생 걸었죠!

67년 전통의 프리미엄 배 농사짓는,
이승호 슬기로운 청년농부 대표

‘힘든 농사일만큼은 아들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며 일찍이 아들 셋을 미국으로 유학 보낸 아버지 덕분에 중학교 3학년 때 유학길에 오른 이승호 씨. 하지만 3년 전 부친의 대를 이어 배 농사에 뛰어든 이승호 씨는 이제 아메리칸 드림 대신 배 탄산음료로 음료 시장을 평정하겠다는 원대한 파머스 드림을 실현해 가고 있다.

. 백연선 자유기고가 / 사진. 최충식

이미지

경기 평택시 진위면 가곡2길. 무봉산 자락에 안긴 가곡리와 동천리 일대는 마을 곳곳이 야트막한 배밭으로 둘러싸여 있는 배 주산지다. 부모와 함께 9만 2,400㎡(2만 8,000평) 규모의 농장에서 배 농사를 짓는 이승호 씨(33)는 배로 유명한 이곳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청년농부다.

훤칠한 키에 반듯한 외모로 반갑게 기자를 맞은 그의 겉모습은 영락없는 신세대지만, 배 농사에 대한 열의만큼은 누구보다도 뜨거운 농사꾼이다. 중학교 3학년 때 유학을 떠나 대학을 졸업하고, 멋진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것 같았던 승호 씨가 7년여 간의 미국생활을 접고 농사에 뛰어든 건 지난 2021년 3월의 일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왕래가 어렵던 시절, 잠깐 짬을 내 국내로 들어왔던 그에게 아버지 이해학 씨(60)가 “대를 이어 배 농사를 한번 지어보면 어떻겠느냐”고 조심스레 제안해 온 것.

사실 아버지 이해학 씨는 본인이 선친인 이재선 씨의 대를 이어 농사를 지어왔지만, 힘든 농사일만큼은 아들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생각에 일찍이 아들 셋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며 새로운 세상에서 살기를 원했던 분이다.

“의외다 싶었어요. 아버지가 동생들과 저를 미국에 보낸 이유를 알기에 처음 그 얘기를 듣고는 진심인가 했죠. 하지만 그새 나이가 드신 아버지는 자식 중 누군가는 대를 잇기를 바라셨고, 진심을 담아 저에게 말씀하셨던 거죠.”

당시 미국에서 돌아와 시간이 날 때마다 아버지를 돕던 그는 농사가 적성에 맞았다. 또 농업과 농사에 관해 공부하며 점점 노령화하는 농촌에서 자신의 브랜드만 갖춘다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미국 생활과 농사를 사이에 두고 고민하던 그는 며칠간의 장고 끝에 답을 찾아냈다. “그래, 농사꾼이 되자!”

이미지

미 유학 접고 새롭게 시작한 배 농사

그 길로 승호 씨는 농사일에 뛰어들어 지난 3년간 좌고우면하지 않고, 배 농사에 모든 시간을 바쳤다. 아버지의 어깨너머로 영농기술을 배우는 한편으로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아버지 이해학 씨는 평택에서는 거의 처음으로 유기농 배 인증을 받은 선도 농업인이다.

어느정도 배 농사가 손에 익은 지난해 초에는 ‘슬기로운 청년농부’라는 타이틀로 스마트스토어에 진출해 온라인 판매 시스템을 구축했고, SNS 활동도 시작해 슬기로운 청년농부(@y_manpear)라는 채널을 통해 소비자들과 소통에 나서고 있다. 또한, 평택시농업기술센터에서 라이브커머스 과정을 수료하고는 지금까지 수차례에 걸쳐 라이브커머스를 진행하며 단골을 확보해 자신만의 브랜드를 키우고 있다.

물론 농사를 시작하고 나서 후회가 없었던 건 아니다. 특히 8월과 12월 딱 일주일씩 짬이 나는 것 외에는 종일 농사일에 매여있어야 하는 현실이 답답했다. 부친에게 월급을 받는 일반 샐러리맨과 다를 바 없는 생활도 그를 옥죄었다. 하지만 이런 불만과 불평도 지난해 농업인후계자로 선정돼 아버지로부터 유기농 배를 재배하는 2만 6,400㎡(8,000평)의 밭을 물려받으며 씻은 듯 사라졌다. SNS와 라이브커머스 활동으로 소비자들과의 소통이 활발해지면서 농사로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이미지

‘슬기로운 청년농부’ 브랜드를 향한 꿈

승호 씨가 이야기하는 ‘슬기로운 청년농부’ 농장만의 차별점은 두 가지다. 첫째, 해마다 5월쯤에는 게르마늄과 유황을 물에 희석해 나무 전체에 뿌려줌으로써 과육을 단단하게 해 아삭아삭한 식감을 살린다. 둘째, 배를 수확하기 전인 6~7월에 집에서 직접 만든 막걸리를 배나무 뿌리 주변에 살포해 살균 효과를 높이고 당도를 끌어올린다는 것.

이런 노력으로 승호 씨는 부친과 함께 한 해 500톤의 배를 생산해 10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린다. 특히 스마트스토어와 라이브커머스를 시작하면서 이 플랫폼만으로 월 1,000만 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 그야말로 30대 초반에 남부럽지 않은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 하지만 승호 씨는 인건비며 자잿값 등 경영비를 제하면 손에 들어오는 수익은 얼마 되지 않는다며 속상해한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승호 씨는 지금 배 가공품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다. 못생겼다고 버려지는 B급 상품을 활용해, 착즙기로 갈아 탄산을 주입하는 배 탄산음료를 선보이겠다는 계획이다.

“적어도 1년 안에는 원물 90%의 국내산 배 탄산음료를 맛보실 수 있을 겁니다. 배 농사뿐 아니라 배 가공사업으로도 성공해 제가 왜 미국 생활을 접고 농사일에 뛰어들었는지 알려주고 싶습니다.”

때가 이르면 달콤하게 차오르는 배 과육처럼, 그의 꿈도 무르익어가고 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