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소가 행복한 농장에서
최고의 원유가 만들어진다

아이디어 넘치는 청년농업인, 김의중 용화목장 대표

대를 이어 젖소를 키우는 김의중 씨(34)를 만나기 위해 찾은 경기 안성 용화농장에는 젖소들 수십 마리가 한가로이 노닐었다. 분뇨 냄새도 거의 나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게 관리된 농장은 1년 내내 체세포 1등급 원유를 생산하는 비결이 숨어 있는 듯했다. 젊은 축산인 김의중 씨를 만나본다.

. 백연선 자유기고가 / 사진. 최충식

“원유 체세포 1등급 비결은 사육 환경이 좌우합니다.”

김의중 씨는 부친 김용화 씨(66)의 뒤를 이어 젖소를 키우고 있는 청년농업인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간만 나면 부친을 도와 목장 일을 해오던 그에게 목장을 운영하는 건 너무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원래 꿈은 요리사였어요. 고등학교 졸업 후 진로를 놓고 고민할 때 아버지께서 젖소를 한번 키워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셨어요. 안정적인 소득을 올리는 데 낙농업만큼 좋은 게 없다면서요. 어렸을 때부터 저도 모르게 목장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터라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어요. 한번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리하여 2008년 낙농업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연암대 축산학과에 진학한 그는 2010년 졸업과 동시에 부친의 뒤를 이어 목장 일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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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 꿈 접고, 부친의 뒤 이어

물론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늘 가까이서 접했던 일이라 모든 일에 자신감이 있었지만, 현장에서 직접 젖소들을 돌보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학교에서 배운 이론과 현실이 다른 데서 오는 고민도 깊었다. 이런 그의 곁을 지키며 용기를 북돋워 준 건 부친 김용화 씨였다.

“제게 가장 큰 스승은 아버지입니다. 목장 일은 살아있는 동물을 키우는 일이라 돌발상황이 많거든요, 책에서 배우지 않은 일들이 자꾸 튀어나오니 늘 긴장하면서 살아야 하지요. 그때 아버지께서 꼼꼼히 가르쳐주시며 격려해 주신 것이 큰 힘이 됐습니다.”

그가 목장에 들어온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 용화목장은 몰라보게 발전했다. 우선 목장 규모가 커졌고, 사육하는 젖소만 해도 150두가 넘는다. 6,600㎡(2,000평)의 농장을 포함해 목초지만 해도 6만 6,000㎡(2만 평)가 넘고, 쿼터 역시 2,400L에 달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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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그의 농장에서 생산하는 원유는 1년 내내 체세포 품질 등급 최상위를 유지한다. 체세포 최상위 등급은 그만큼 젖소가 건강하다는 의미로, 쾌적한 사육 환경에 좋은 사료를 먹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렇게 좋은 원유를 생산하는 데 있어 첫 번째 비결은 젖소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그는 농장 청결에 특히 힘을 쏟고 있다. 축사 온도가 높으면 소가 잘 먹지 못하니까 천장에 커다란 환풍기를 달고 지붕엔 스프링클러를 설치해 적정 온도를 유지하도록 돕는다.

사료를 만드는 데도 공을 들여 그의 농장에선 조사료와 배합사료 원료를 섞어 직접 사료를 만든다. 6만 6,000㎡(2만 평) 규모의 논농사에서 나오는 볏짚과 호밀, 옥수수 등을 재배해 발효 사료를 만들다 보니 연중 질 좋은 사료 공급이 가능하다. 이와 함께 시 농업기술센터에서 가져온 BM 활성수를 축사 안에 수시로 살포해 부숙을 촉진하고 냄새를 줄이는 데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김의중 씨는 부친 김용화 씨의 30년 축산 노하우에 자신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합쳐 인근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질 좋은 우유를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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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효율 높여, 가성비 높은 목장 만들 터

김의중 씨의 축산여정에 늘 꽃길만 있었던 건 아니다. 성공의 기반을 다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고비가 찾아왔다.

“위기가 온 건 스물여덟 살 때였어요. 어느 날 문득 이 나이에 내가 이러고 사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죠. 젊은 나이에 시골에 묻혀 사는 게 갑자기 답답했어요. 이젠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농장을 박차고 나와 학원에 다니며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어려서부터 꿈꿨던 일이어서인지 그의 요리 실력은 일취월장했고, 2019년 전국한우요리경진대회 최우수상을 받는 등 요리사로서도 화려한 이력을 쌓아갔다.

하지만 2011년 후계농업경영인으로 선정된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의 발목을 잡았다. 후계농업인으로 묶여 있다 보니 취업이 쉽지 않았던 것. 2020년 마침 김의중 씨를 대신해 농장 일을 돕던 외국인 근로자가 갑자기 일을 그만두는 것을 계기로 그는 다시 농장에 복귀했고, 그 후 지금까지 한눈 한번 팔지 않고 농장을 지키고 있다.

김의중 씨의 아침은 늘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시작된다. 일을 돕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있지만, 사료를 주고 젖을 짜는 일까지 모든 일을 그는 꼼꼼히 챙긴다. 젊은 나이에 종일 농장을 지키는 일이 쉽지 않지만, 김의중 씨는 짬을 내 여행을 가고, 언제든 친구들이 찾아와 술잔을 기울일 수 있도록 농장 옆에 글램핑 시설을 갖추며 나름의 즐거움을 찾고 있다.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목장 일을 하기 위해서다.

“젖소가 행복한 목장을 만들어야겠지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목장주이면서 음식점 사장이란 꿈도 이뤄질 거로 생각합니다.”

그는 여전히 요리사가 되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다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지금 당장은 경영비 대비 투자 효율을 높여 최대한 가성비 높은 목장을 만드는 새로운 꿈을 이뤄가고 있다고 한다. 그 꿈을 응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