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예치료의 필요성
최초 인류 삶의 터전은 아름다움과 의식주를 해결해 주는 녹색의 정원이었고, 오늘날에도 모든 현대인들은 녹색의 식물(자연)에 대한 본능적인 그리움에 몸부림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다른 생명체에 비해 식물을 하찮게 취급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이는 마치 공기의 귀중함을 모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식물을 통한 아름다움의 인식과 의식주 해결을 위한 인간의 활동을 우리는 원예활동이라고 한다. 이러한 원예활동은 인류의 시작과 더불어 시작되었으나 17세기에 와서야 비로소 ‘원예(Horticulture: 둘러쳐진 곳에서 (Hortus)식물을 경작하는 것(culture)’로 정의되었고 하나의 학문으로 발달되기 시작했다. 원예란 식용, 약용 또는 미적 만족을 위해 집약적으로 재배되어지는 식물에 관한 과학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초기 원예는 인간, 식물, 그리고 환경과의 관계성 속에서 발달하기 보다는 인간의 물질적 유익에 초점을 맞춘 생산 및 이용 기술적인 측면에서만 주로 발달되어져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원예란, 이런 범주 이상의 것이며, 인간의 육체 및 정신생리의 건강과 회복에 그리고 자연의 균형에 우리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엄청난 영향을 끼쳐 왔다는 사실이 최근의 연구에 의해서 명확히 밝혀지고 있다.

인간의 문명과 문화가 급속히 발달하였던 지난 19-20세기 동안 산업화, 도시화, 현대화,그리고 기술화된 사회가 도래하게 되었으며, 우리의 삶이 향상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우리가 저질러 놓은 산업화와 도시화의 부산물들 즉, 공해, 수질오염, 쓰레기, 도시의 범죄, 녹지의 감소, 정신과 육체의 불균형 등으로 인하여 우리 생활 주변의 ‘환경의 질’은 ‘삶의 질’ 을 항상 위협하고 있는 ‘이카루스(Icarus)’적 삶을 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원예란 자연(nature:야생적이고 길들여지지 않은 인간 밖의 힘으로서)과 문화(culture:인간의 통제로서 )의 중간지점을 점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우리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탈자연화로 신이 섭리를 부정하고 바벨탑을 쌓고 싶어하는 인간의 위대함에 대한 우월감과 모순적이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자연에의 회기’혹은 ‘샹그리라’를 찾고 싶어하는 본능적인 열망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의식주가 삶의 전부가 아닌 현대인에게 있어서는, 첫째로 식물을 대상으로 하는 원예활동의 범위와 효과를 보다 넓게 이해함으로서 녹색과 동행하는 삶의 중요성을 인식하고,둘째, 원예의 새로운 분야인 원예치료를 알고 육체적 정신적 질병의 치료방법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또한 주거 환경 내 뿐만 아니라 직장, 도시 내에서 ‘녹색의 쾌적성(green amenity)’를 통한 삶의 질을 높이는데 적용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