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에 미래 건 젊은 양돈인 신솔 씨

동물도 행복한, 건강한 목장 만들고 싶어

축산농가를 떠올릴 때면 사람들 머릿속에 흔히 떠오르는 몇 가지 고정관념이 있다. 지독한 악취 그리고 지저분하면서도 험한 노동 환경. 이에 더해 여성에겐 쉽지 않은 일이라는 인식이다. 하지만 이런 편견을 단숨에 날려버린 당찬 여성 축산인이 있다. 경기 포천 일동면에서 돼지를 기르는 젊은 여성 양돈인 신솔 씨(33)가 그 주인공이다.

. 백연선 자유기고가 / 사진. 배호성

돼지 농장은 늘 ‘악취’와 ‘거친 노동’이라는 편견에 가려져 왔다. 특히 여성에게는 더더욱 멀고 낯선 세계였다. 그러나 그 모든 선입견을 깨고, 냄새와 노동마저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새로운 길을 걷고 있는 젊은 여성 양돈인이 있다.

군복을 벗고 추억이 깃든 돼지농장으로

신솔 씨는 양돈농가에서 태어났다. 30년 넘게 돼지를 길러온 아버지 신형순 씨(72) 덕분에 돼지는 그녀에게 어릴 적부터 친숙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뿐, 신솔 씨가 처음부터 양돈인의 길을 걷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대학 시절 ‘멋있을 것 같다.’라는 이유로 여성 ROTC에 지원했고, 2015년부터 2년 4개월간의 의무복무도 성공리에 마쳤다.

“처음 호기심에 시작했지만, 복무하면서 재미도 있고 보람도 컸어요. 다만 의무행정 병과에 배속되면서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죠. 저희 병과 특성상 진급 경쟁이 치열해서 미래를 걸기엔 불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의무복무 기간이 지나면서 그만둬야 한다면 가급적 빨리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죠.”

2017년 6월, ROTC 전역 이후에는 하고 싶었던 일들을 시도하며 자신의 길을 모색했다. 그러던 중 아버지로부터 “이젠 농장 일이 힘들어 그만 정리하고 싶다.”라는 말을 듣게 됐다. 그 순간, 어릴 적 추억이 담긴 농장이 다른 이의 손에 넘어가는 모습을 상상하자 마음이 흔들렸다.

“돼지농장은 우리 삼 남매가 뛰놀던 곳이었어요. 가족의 추억이 오롯이 담긴 공간이죠. 그곳이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너무 허전했죠. 그래서 아버지께 ‘제가 농장을 이어가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어떻게든 농장을 지키고 싶었거든요.”

아버지 신형순 씨는 ‘냄새나고 힘든 일’이라며 그녀를 만류하고 나섰다. 미래가 창창한 젊은 딸이 멋지고 편한 길로만 가길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에서다. 하지만 ‘돼지농장을 지키고 싶다’라는 신솔 씨의 생각은 확고했고, 마침내 아버지는 그녀의 선택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2020년 9월, 본격적인 농장 생활이 시작됐다.
물론 처음엔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혹시 몸에 밴 냄새 때문에 민망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 걱정도 자신감으로 바뀌었다. “이 일도 나의 일부”라는 자부심이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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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도, 노동도… 이제는 내 삶의 일부

경기 포천시 일동면에 자리한 신솔 씨의 농장은 외관만 보면 돼지농장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깔끔하고 정갈했다. 특히 연갈색 벽돌 건물에 붉은 슬레이트 지붕, 주변엔 나무와 꽃이 어우러져 있어 정문 앞 ‘방역상 출입금지’라는 표지판이 없다면 일반주택으로 착각할 정도다. 이런 정갈함의 결과는 방역 성과로도 이어졌다. 특히 그녀의 농장은 8대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며 관리한 덕분에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질병이 발생한 적이 없을 정도로 방역농가의 모범 사례로 꼽히고 있다.
현재 그녀는 이곳에서 부친과 사육은 함께 하되 계산은 따로 하며, 독립적으로 어미돼지(모돈) 250두를 포함해 총 1,200여 두의 돼지를 기르고 있다. 특히 후보돈을 사와 수정하고 번식시켜 임신, 분만, 이유, 육성하는 ‘일관사육방식’을 채택해, 그중 분만사를 전담하며 연 매출 5~6억 원에 달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는 사이 신솔 씨를 향한 아버지 신형순 씨의 신뢰도 날로 커져, 이제는 대부분의 농장 운영을 맡기다시피 할 정도다.

“사실 그동안 농장일을 하면서도 가끔은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어요. 그런데 작년에 부모님이 한 달간 유럽여행을 다녀오시는 걸 보면서 이젠 아버지가 날 믿고 있다는 걸 실감했죠. 그러면서 자신감도 생겼고요. 이제 일흔을 훌쩍 넘으신 아버지에게 더는 손 벌리지 않고 혼자 농장을 잘 운영해나가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 욕심부리며 규모를 늘리는 대신 동물복지에 맞는 환경을 만들어 동물도 행복하면서 건강한 목장을 만들고 싶다는 신솔 씨는 “그것이 나를 믿고 목장을 맡기신 아버지의 뜻을 잇고, 농장을 지켜가는 일이 아닐까 싶다.”라며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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