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명성,
이어가고 싶어요!

지피식물 재배 명인의 길 잇는,
김신준 신준농원 대표

낮게 자라며 지표를 덮는 식물을 지피식물이라고 한다.
고급 아파트나 골프장, 리조트는 물론 관공서 등의 조경에 많이 쓰인다.
잘 나가던 요리사 일을 접고 바로 이 지피식물에 인생을 건 청년농부가 있다.
그는 신준농원 김신준 대표다. 지피식물계의 산증인으로 꼽히는 부친의 뒤를 이어 지피식물을 기르며 농사일을 오랫동안 잘하고 싶다는 그를 만나봤다.

. 백연선 자유기고가 / 사진. 최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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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훼로 유명한 경기도 용인시 남사면. ‘이곳에 이렇게 큰 농장이 있었나’라고 감탄할 정도로 방대한 규모의 비닐하우스 안에서 청년농부 김신준 씨(36)는 주문받은 식물들을 정리하느라 아침부터 분주한 모습이었다.

“식물 중에서도 지피류를 주로 재배하고 있어요. 지피류는 계절을 타지 않는 데다, 수요도 꾸준합니다. 그래서 제게 농장을 지키는 일은 일상이죠. 농장에 있어야 맘이 편하기도 하고요.”

김신준 씨는 아버지 김성주 씨(59)와 함께 3만 3,000㎡(1만 평) 규모의 시설하우스에서 맥문동, 수호초, 애란, 사사 등 수백만 본이 넘는 지피식물을 생산해 내고 있다. 김신준 씨의 부친 김성주 씨는 30여 년간 지피식물 생산에 매진해 온 우리나라 지피식물계의 산증인으로, 신준농원은 맥문동이나 수호초를 말할 때 가장 먼저 손꼽히는 대표 농장이 되었다. 김신준 씨가 일 년 내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것도 전국에서 신준농원의 식물을 찾는 주문이 밀려들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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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문동, 수호초, 애란 등
지피식물 재배 대표 농원 일군 아버지

김신준 씨가 처음부터 농사를 짓겠다고 나선 건 아니다. 서울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그는 어릴 적부터 자주 농장에 놀러 와 아버지의 일을 도우면서 결심한 것이 하나 있었다. “힘든 농사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라는 것.

그래서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평소 관심이 많았던 요리사의 길을 가겠다고 진로를 정했다. 김신준 씨는 그 길로 요리전문학교에 진학해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따며 농사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됐다. 그 후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한식당에서 일하며 과장 진급을 눈앞에 둔 어느 날이었다. 불현듯 그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삶의 방향을 틀었다.

“요리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업으로 삼으니 즐겁지 않았어요. 그래도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지만, 코로나가 터졌죠. 후임이 들어오지 않으면서 일의 강도가 세지는 등 직장에서의 여건이 더 어려워지면서 강한 회의가 들었습니다. 그때 농장이 떠올라서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죠. 다짜고짜 아버지에게 제가 농장에서 일하면 먹고 살 수 있을지 물었어요.”

그간 그는 농장 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기에, 부친의 농장이 1만 평이 넘는 규모에 한 해 매출만 수억 원이 넘는다는 사실을 몰랐다. 되돌아보면 그저 입에 풀칠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던 그의 바람은 너무나 우스운 헤프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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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명의 넘기며
아들의 도전을 응원한 아버지

그의 결정에 아버지는 농장의 일부인 2,640㎡(800평)를 물려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부친은 그가 직장을 정리하며 인수인계를 하던 몇 주 동안 신준농원의 대표 명의를 김신준 씨로 바꾸며 그의 결정을 응원했다. 또한, 농장에 수국과 억새, 사초를 새롭게 심으며, 그동안 엄두를 내지 못하던 일도 아들의 합류를 계기로 새롭게 시도해 나갔다. 그만큼 아들에 대한 믿음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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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2022년 3월경 김신준 씨가 농장에 합류하며 일의 분배도 자연스레 이루어져 부친 김성주 씨는 주로 생산과 시설관리를, 그는 판매와 유통에 주력하고 있다. 신준농원에서 생산하는 식물들은 주로 관공서나 아파트, 골프장, 리조트 등의 조경용으로 팔려나간다. 따라서 건설경기에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다른 작목에 비해 판로 걱정은 덜 한 편이다.

하지만 농장 규모가 큰 만큼 고민이 없을 수 없어 매출의 70~80%에 달하는 경영비 지출을 줄여나가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여기에 하우스 옆 농막에서 출퇴근하다 보니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것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제가 농사를 짓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던 모습이 생각나요. 누군가는 자신의 뒤를 이어주길 바랐지만, 저는 아니라고 생각하셨대요. 그만큼 저는 농사에 관심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농사를 지을수록 해볼 만한 일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제 농사일을 시작한 이상, 제 앞에 놓인 일들을 하나씩 해결해 가며 오랫동안 잘하고 싶어요. 그렇다고 거창한 꿈이 있는 건 아니고 그저 부친이 일궈놓은 명성을 잘 이어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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